돌이키고 싶은 하루
[1] 프롤로그: 어떤 일기
친했다고 기억되는 그 형에 대하여 말해보라면,
자신 있는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그 형을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형은 우리가 보는 앞에서 화를 내지 않았고,
울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형은 대개 짓궂고 장난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가끔을 속내를 알 수 없이 진중하고 어른스러웠다.
성년이 지났지만 어른은 되지 못했던 나에게
가장 어른처럼 말하고 들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항상 나보다 어른이었던 형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부끄러운 손으로
조화(弔花) 하나 얹지 못했던 그날이 가장 미안하다.
(2009.8.30.)
[2] 당신에게
잘 지내시나요. 고인(故人)이 된 당신에게 이처럼 무용한 인사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렇다고 다른 마땅한 인사를 떠올릴 수도 없었어요. 미안해요. 저는 종교를 갖지 않지만, 안부를 묻는 저의 전언이 닿을 수 있는 당신의 령(靈)과 그 령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 봐요. 오늘의 글쓰기 주제가 그런 것이거든요. 맞아요. 저는 한 주에 한 편 남짓의 글을 쓰고, 두 주에 한 번 만나는 글쓰기 모임을 다녀요. 이번 주에는 제가 바라는 어느 하루의 모습을 자유롭게 구상해 보라는 공지를 받았어요. 그런 핑계로 저는 수신인이 저인지, 당신인지, 또 다른 누구인지도 모를 서간(書簡) 형식의 글을 적는 거예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일기장을 펼쳤어요. 당신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이 벌써 18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어요. 제가 당신을 알고 지낸 세월의 곱절의 곱절의 곱절도 더 지난 세월이 지난 것이에요. 당신의 시간이 멈춘 그 하루로부터요. 하긴, 그래요. 어쩌면 지금의 저를 보게 된다면 당신은 저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저의 모습이 많이 변해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풋풋함을 잃어버린 외모도 그렇거니와, 어떤 아이들의 선생 노릇을 하는, 한 여인의 배우자가 된, 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제 모습이 당신께는 낯설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선한 풋풋함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으로 때묻는 저의 태도가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당신의 시간이 멈춘 날로부터,
우리는 그 변화들을 공유하지 못했으니까요.
당신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당신께 많은 것을 받았지만, 많은 것을 내어 주어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하지 못했거든요. 당신은 제 마음속 깊이 내재한 어둠을 헤아리고 걷어 주었지만, 그 이상의 어둠이 당신의 마음속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저는 미처 알지 못했거든요. 당신 역시 외롭고 쓸쓸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그때의 저는 도무지 알 수 없었거든요. 그 어떤 징후나 조짐도 없이 찾아든 소나기처럼, 부고로 전해진 당신의 소식이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부고도, 부고의 까닭도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형식이었어요.
제가 기억하는 당신은요. 뭐랄까 참 기이한 형이었어요. 사수(四修) 끝에 국어교육과에 입학한 당신의 수험 이력도 평범하지 않았지만요,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만의 별난 통찰과 당돌한 자신감이 가장 도드라졌다는 생각이에요. 형은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고 그 이상으로 언변이 좋았었죠. 때문에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처럼 스무 살 동생 동기들의 고민 상담소 역할을 충실하게 해 주었어요. 형이 가진 별난 고유성을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요, 저는 무렵의 형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로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형의 재능이 부러웠던 건지도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형에게 많이 의지했던 기억이 나요.
형은요, 제가 성년이 되어 처음으로 가깝고 깊게 사귄 친구였어요. 저는 형에게 많은 것을 물었어요. 우정이 뭔지, 사랑이 뭔지, 꿈은 뭔지, 삶은 뭔지. 형은 좋은 대답을 해 주었어요.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화를 통해 느낀 고양감은 흐릿하게나마 떠올릴 수 있어요. 20년이 조금 덜 지난 먼 과거의 일이지만, 그 기억의 원점으로부터 아직도 가시지 않은 미열 같은 온기가 느껴지는 기분이에요.
그 온기를 쫓아, 기억의 다른 일면을 떠올려 봐요. 공강 시간에 코인 노래방이나 PC방에서, 혹은 사범대학 솔밭 정원에서 허송했던 시간들이 생각나요. 동기 MT나 학회 MT에서 평상에 누워 천장 같은 하늘을 보며 공상(空想)을 공상(共想)하던 시간들도 생각나요. 회상을 통해 형과 제가 가까운 사이였다는 걸 새삼 느껴요. 그래서 “호진이 형이 정호를 참 아껴.”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얼핏 나요. 형은요, 제가 대학 생활에 적응하고 우리 학과에 정붙이고 졸업할 수 있게 만든 은인이었어요. 형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 저의 삶은 크게 달라져 있을지도 몰라요.
2007년 여름, 형은 군대에 갔어요. 그리고 전방부대의 수색대대로 배치받았죠. 공비(共匪)로부터 휴전선을 지킨다는 형이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을 때, 공비(共匪)처럼 야위어 있던 모습을 잊지 못해요. 우리는 맥줏집에서, 과방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사실은 형이 대화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했었어요. 누구나 한 번은 들어 봤음직한, 과장 섞인 군대 썰들을 형이 신나게 풀던 기억이 나요. 군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유쾌하고 당당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지요. 제가 조금 더 사려 깊었다면, 마음을 헤아라는 눈이 있었다면, 유쾌함의 이면에 감추어진 쓸쓸한 어둠을 감지할 수 있었을까요.
2008년 봄이었어요. 두세 번 정도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던 것 같아요. 귀가 뜨끈하게 통화를 했었는데요. 그 길이가 1시간이 넘어서 엄마는 애인이라도 생긴 건가 싶었다 했어요. 그땐 맥줏집이나 과방에서보다 더, 과장이 많이 섞인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은요. 넉넉지 않은 휴식 시간에, 그만큼 오랜 시간 저에게 전화를 해야 했던 형의 외로움을 헤아렸어야 하지 않았냐는 아쉬움이 들어요. 그래서 형에게 격려나 위로를, 형이 내게 그랬듯 형을 웃을 수 있게 하는 말들을 해 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도 저는요, 사실 그 통화가 길어서 어느 정도는 시큰둥하게 대화를 이어갔었어요. 분명 그랬었죠. 그런데요,
무렵의 통화가 형과 나누는 마지막 대화일 줄은 몰랐어요.
그래요. 저의 입장에서는 조짐도 징후도 없이 당신의 소식이 부고의 형식으로 전해진 것이었어요. 당신의 외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괴로움이 죽음의 형식으로 완성되는 시간 동안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어요. 그 때문에 언젠가의 통화에서 당신은 나를 필요로 했을 텐데, 나는 오히려 냉대한 반응을 보인 것이었어요. 그 점이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러웠어요.
2008년 6월 14일, 당신의 영결식이 치러지는 날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동기들과 함께 식장으로 가는 길이 멀고, 멀었어요. 멀고 먼 길을 가는 동안, 저는 내내 울었어요. 당신이 그립고 그립고 그리웠어요. 그리고 미안했어요. 그 모든 게 다, 미안했어요.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당신을 바라볼 수 없었어요. 모두가 헌화를 한 송이씩 얹고 고별을 고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가는 길 오는 길 내내 우는 것이 전부였어요. 돌이켜보면 헌화하지 못한 그 하루도 미안했어요.
그리고 딱 한 번, 당신을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추모의 형식을 알지 못해서 격식 없이 찾아가 인사를 남기고 돌아왔어요. 납골로 남은 당신의 몸을 통해, 당신의 기억도 저의 마음에 납골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납골된 당신은, 그리고 당신의 기억은 이후로 무척이나 쓸쓸했을까요. 서운했을까요. 나는 무렵의 내가 그랬듯 지금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어요.
다만, 늦었지만 미안하다는 인사를 이렇게 남겨요.
만약 상상처럼 저에게 전능한 하루가 주어진다면, 당신의 목소리가 수화기로 넘어들어올 때 좀 더 따뜻한 말을 전하고 싶어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을 마지막으로 보내주던 날, 부끄러운 손으로나마 헌화를 얹고 인사를 하고 싶어요.
호진이 형, 고마웠어요.
형이 살아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보고 싶어요.
잘 있어요.
2025.4.18. 정호 씀.
[3] 에필로그: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혹은 마음이란 우주를 유영(遊泳)하는 영혼처럼
‘당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억의 천체를 찾아보았다는 생각이에요.
당신이라는 기억은요,
언젠가는 뜨겁디 뜨거운 ‘항성’ 같은 존재였지만,
또 언젠가부터는 외롭고 쓸쓸한 ‘흑성’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해요.
저도 모르게
당신을 잊고 외면해 온 세월 동안
당신에 대한 기억이 많이 빛바래고 흐릿해져 있음을
글을 쓰며 느껴요.
저의 상상처럼
당신에게 바치는 헌화가 허락되지 않는다면
늦었지만 헌화를 대신할 수 있는
작은 글이나마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늦어서 미안해요.
당신을, 그리고 당신이라는 기억을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지만
당신의 취향과 통찰, 그리고 배려가
청춘의 저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요.
늘 고마웠어요.
그곳에서는 외롭지 않고 행복하기를 바라요.
(2025.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