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대화의 풍경
[1] 반성
가족 나들이를 다녀 온 화창한 주말의 오후였어요. 육아 퇴근을 위한 마지막 미션, 놀이터 다녀오기만을 남겨둔 시간이었죠. 널찍한 공터에서 방목된 망아지처럼 놀이기구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어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표정은 목동 같았죠. 기울어가는 해넘이를 보며 이번 주말도 무사히 넘겼다며 안도하는 표정이었어요. 나도 그랬어요. 때마침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고요. 그런데요. 몇 발치 밖에서 아이와 놀아주는 대학 선배를 본 순간, 마음의 평온이 깨어지고 말았어요.
그를 특별히 미워하는 것은 전혀 아니에요. 나는 그에 대해 어떠한 호오(好惡)를 갖고 있지 않았어요. 단지, 같이 졸업했기 때문에 인사치레라도 해야 마땅한 그 상황이 부담스러울 뿐이었죠. 그 선배도 그랬을까요. 서로 눈이 마주치고 2초 정도의 정적, 그리고 잠깐 어색한 대화가 이어졌죠. 아내와 아이를 사이에 두고 어색한 캐치볼처럼 몇 마디를 주고 받았죠.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제각각의 방향으로 등을 돌렸고,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의 아이들이 달려가는 꽁무니를 따라가며 헤어졌어요.
집에 가는 길,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찝찝했어요. 내가 사회성이 부족한 건가. 나는 심란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물었죠. 쫑알거리는 아이에게 대꾸하느라 정신 없던 아내가, 그렇지 않다며 나를 위로했어요. 교유 없이 소원한 이들 간의 우연한 만남 속에서 능숙한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거라고 덧붙이면서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개운하지 않았어요. 사무가 아니라면 대화의 깊이를 가질 수 없는 인간이 된 게 아닌가 걱정되었죠.
바둑 기사가 수담(手談)으로 나눈 대국을 복기하듯이, 언담(言談)으로 나눈 선배와의 대화를 복기했어요. 안부를 묻는다거나, 아빠인 선배에게 매달린 아들들에게 상냥한 인사를 건넨다거나 하는 간단한 도리와 예절도 지키지 못했죠. 책임을 물을 만큼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뜻하지 않은 우연 속에서도 따뜻하고 다정한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나는 그날의 언짢음이 어디서 비롯한 건지 알 수 없었어요.
[2] 좋은 화자 되기
[프로그램 소개]
나의 하루, 지금 내 마음을 한 편의 에세이로 씁니다.
왜 써요? (…)
내 글에 남들이 웃어주고, 공감해주고, 진지하게 의견 주는 기분… 솔직히 개꿀이에요.
- 씀에세이 클럽 소개문에서
나는 두 주에 한 번씩 따뜻해져요. 두 주에 한 번 ‘씀에세이’를 통해 필담(筆談)을 언담(言談)으로 나누거든요. 주고 받는 대화의 온기가 저를 따뜻하게 만드는 걸까요. 그 안에서는 퍽 어렵지 않게 다정하고 능숙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필친들이 내어 준 속 깊은 사연들에 어렵지 않게 공감하고, 그에 힘입어 내 속에서 떠돌고 있던 내면의 소리를 용기 내어 꺼낼 수 있어요. 내가 모임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쓰기만큼이나, 어쩌면 쓰기보다도 더 대화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개꿀”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요.
언젠가 한파가 심하게 불어닥친 날, 보일러를 고치느라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필친 님이 한 분 계셨어요. 우리 모임의 호스트 민진 님(그때는 호스트가 아니었지만, 비슷한 역할이었어요)은 그 사정을 섬세하게 기억했다가 다음 모임에서 안부를 물었었죠. 그래서 이제 귀뚜라미인가요라는 식으로,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던져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고요. 잠시 후 우리는 어떤 분의 글에 담긴 연애와 사랑을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실없고 따뜻한 농담과 속 깊은 이야기가 공존할 수 있는 우리 클럽의 소통 방식이 내게 큰 만족감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득, 민진 님이라면 선배와의 대화에서 어떤 모습이었을까 떠올려 봐요. 그 분이었다면 뭔가 서로를 실소하게끔 만드는 재치 있는 농담으로 상황을 풀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실재로 민진 님은 어떤 분이 우리 모임을 찾아오더라도 ‘재미있고 충만했다’는 기분이 들 수 있게끔 노력하고 배려하시거든요. 그 유려하고 능숙한 대화 솜씨는 정말이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제가 두 주에 한 번은 따뜻해질 수 있는 까닭은, 글이라는 매체가 갖는 문장의 온기와 민진 님을 비롯한 필친들의 대화를 통해 느끼는 부드러운 말의 질감이 갖는 포근함 덕분이 아닐까 해요. 아마도 저는 쓰기만큼이나 매력적인 대화의 맛에 중독된 듯해요. 그래서일까요. ‘씀에세이’에서 만나는 대화의 고수들만큼 능숙해질 수 없겠지만요, 되도록이면 저와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따스함과 편안함을 말로써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렇게 전하는 온기가 다시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대화의 달인이 되는 길은 멀고 험하겠죠. 다시 한 번 그 선배를 마주친다 해도 대화의 풍경은 여전히 어설프고 어색할지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 속에서 다정과 온기를 추구하는 마음이 나를 조금 더 나은 화자(話子)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봐요. 민진 님만큼의 유려한 달변을 바라지는 않아요. 다만 소소한 웃음과 잔온(殘溫)처럼 따뜻한 여운을 남기는 말을 건넬 수 있는 화자면 좋겠어요. 아마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죠.
이번주의 공부는 ‘씀에세이’에서 나누는 필담과 언담입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금요일을 설레며 기다려요. 주고 받는 문(文)과 필(筆)과 담(談)이 저를 더욱 따뜻한 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면서요.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