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 대한 고찰

실수를 저질렀을 때 필요한 마음가짐에 대하여

by 박정호

15년 전,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어쩌다 부대원의 입창(入倉)*을 결정짓는 징계위원회의 간부 위원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색이 되어 반대편에 앉은 부대원은 전역일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스물셋 말년 병장이었다. 법정처럼 경직된 정적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실수였습니다.”

사연은 그랬다. 어느 때부턴가 오천 원, 만 원씩 병사들의 용돈이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폐쇄 공간인 부대 안에서 돈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누군가 절도를 행한다는 의미였다. 돈에 이름을 쓴 것도 아니거니와 이름 쓴 돈은 가져갈 일도 없어 범인을 잡지 못해 온 부대가 어수선했다.

범인이 밝혀진 경위는 기가 막힌데, 심증을 갖고 범인을 특정하던 한 녀석이 자신이 가진 화폐의 일련번호를 모두 적은 후 일부러 범행을 유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돈이 사라진 다음 날, 군장 사열을 명목으로 모든 부대원들의 금품과 소지품을 함께 검사하면서 범인이 드러났다.

호기심 때문에 벌인 치기 어린 실수였다는 것이 그의 변명이었는데, PX도 활용할 수 없는 GOP 부대였던 데다가 그가 훔친 몇 만 원이 전역하여 돌아갈 사회에서는 큰돈이 아니어서 온전히 거짓된 변명은 아닐 듯싶었다. 다만, 그 행동이 실수라기보다는 명확한 목적과 의도를 갖고 벌인 도착적 일탈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위원회의 판단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9박 10일 영창이라는 징계를 부여했다.

그날의 징계위원회는 나에게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그는 절도라는 그의 행위를 조절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그의 행위를 도덕적 잣대를 통해 평가할 수 있는가. 또 도덕적 평가를 넘어 군법을 동원하여 자유를 구속하는 형을 선고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우리가(혹은 내가) 그에게 내린 평가와 징계 행위는 정당하고 옳았는가. 나는 그날로부터 가졌던 문제의식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다만,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상기한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오늘 실수라는 행위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 실수(失手):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혹은 그런 행위

사전은 실수를 위와 같은 말로 정의한다. 사전의 정의는 두 가지 가치 판단을 동반한다. 하나는 ‘잘못’을 통해 드러나는 행위의 성격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심하지 아니하여’를 통해 드러나는 행위의 동기나 원인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 ‘조심하지 아니하여’다.

조심하지 아니하여 발생한 잘못을 실수라 정의한다면, 그 정의 속에는 행위자가 조심했을 때 실수라는 결과가 초래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포함된다. 이를 위해서는 행위자의 품성과 능력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그 전제를 조금 비뚤게 바라보고자 한다. 조심을 동반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은 적절한가. 더 나아가 조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는 가정이 가능한가. 그것이 적절하거나 가능하지 않다면, ‘실수’라는 표현에는 행위자의 품성과 능력에 대한 지나친 관용이 포함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실수의 행위자가 자신이라면 지나친 자기 합리화나 오만으로도 느껴진다.

“실수도 실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직장에서 오래 통용되는 격언과도 같은 말이다. 나는 그 말이 갖는 어감(가시 돋친 까칠함이라 표현하겠다)이 상대를 불편케 하는 경향이 있어 선호하지 않지만, 그 말이 품고 있는 실수라는 행위에 대한 통찰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그것은 실수는 불운에 의해 혹은 우연에 의해 발생한 무엇이 아니라, 인과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실 실수는 지극히 인간적인 현상이고, 나다운 행위다. 내가 하는 모든 실수가 나를 닮았다. 아니, 사실은 나다.

실수를 내 밖의 것이 아닌 나로 받아들이는 자세. 나는 그것이 실수에 대한 인식의 출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수를 떨칠 수 없으므로 체념하자는 것이 아니다. 인정과 납득이라는 자기 객관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타인으로부터의 용서 더 나아가 나로부터의 용서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반성을 통해 그 실수 너머의 인간이 될 수 있다. 오늘의 나는 숱한 실수가 빚어낸 실수 같은 자아다. 나는 마흔이 다 되어 불완전하게나마 그것을 받아들인다.

*입창: 법을 어긴 군인을 영창에 들여보내는 일


(20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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