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인이 된 아침

채워진 삶에서 빠져나온 아침

by 송파파

육아휴직일기# 8


달력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아침이 낯설었습니다.


육휴를 내고 2주가 지났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와 소파에 앉았을 때 든 생각은 뜻밖에도 이것이었습니다.


‘이제 뭘 하지?’


오랫동안 출근이 익숙했던 사람에게 여유있는 아침은 자유롭지만 당혹스러운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해방감이 아니었습니다.

공백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한 번도 제 시간을 온전히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10대와 20대 초반은 학교와 군대가 시간을 가져갔습니다.

제대 후 잠깐의 틈이 있었지만 그 시간마저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채워졌고, 이후 16년은 회사가 가져갔습니다.


저는 늘 무언가의 시간에 맞춰 살았습니다.

그것이 너무 오래되어, 내 시간이 따로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습니다.


변화는 조용히 왔습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내가 정한 루틴대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것들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사실이

그날 따라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습니다.


아, 이게 내 시간이구나.


사실 저는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란스러운 것도 싫고, 혼자 조용히 멍때리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 편안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많은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적응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게 나인지 아닌지도 헷갈려버렸습니다.


휴직은 그 헷갈림을 걷어내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취향의 윤곽이 매일 조금씩 다시 선명해지는 느낌입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저조차 몰랐던 또 다른 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물론 압니다.

2주가 지났을 뿐입니다.

아직 통장은 크게 줄지 않았고, 다음 달부터 육휴 급여를 받으며 살게 되면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회사 안 가니까 기분 좋은 거 아니야?“라는 말,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살기보단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면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삶을 향한 마음이 2주 사이에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것.


1년 뒤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아직 모릅니다.

이전으로 돌아가 안전한 삶을 살지, 두렵지만 새로운 길을 걷게 될지. 섣불리 결정을 내리기보단 충분히 겪어보면서 답을 찾아가려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과 아침을 먹고,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전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오후엔 하교한 아이와 아내와 반려견과 함께 산책도 하고 공원도 가고 바다도 걷고. 거창하지 않지만 오래 꿈꿔온 하루입니다.


1년 뒤의 나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상상해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그럼에도 서운합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