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좆됐어 그냥
최근 문화계를 둘러보면 묘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든 음악이든 게임이든, 진정한 의미의 뉴 웨이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끝없는 오마주와 재생산의 반복이다. 영화계를 보자. 홍콩 느와르의 걸작 ‘영웅본색2’는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 영향을 주었고, 이는 다시 일본 만화 ‘체인소맨’에 흔적을 남겼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루토’의 카카시는 ‘슬램덩크‘의 윤대협을,’주술회전’의 고죠 사토루는 다시 카카시의 DNA를 이어받았다. 새로운 창작이라기보다는 기존 작품들의 유전자가 변형되어 전해지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창작자들의 나태함이나 청년 세대의 취향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 성급하다. 여기에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첫 번째 원인은 창작 자체의 한계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인간 대중문화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다 나왔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대부분의 콘텐츠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데, 이 ‘이야기’라는 것은 인간이 신화 시대부터 계속 재해석을 거쳐온 일종의 아키텍처다. 영웅의 여정, 복수와 구원, 사랑과 상실, 성장과 좌절…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서사의 기본 골격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완성되었다. 아무리 새로운 설정과 배경으로 포장해도, 그 본질은 결국 기존에 존재했던 원형들의 변주에 불과하다. 최근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나 ‘최애의 아이’ 같은 인기 작품들이 고의적으로 작품의 결말을 망쳤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창작자들 스스로도 더 이상 새로운 결말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번째는 현대 창작물의 퀄리티 저하로 인해 동시대에서는 괜찮은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오히려 과거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구하고 있다. 이런 현상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우선 거시경제적인 이유로 더 이상 실패할 자유가 없어졌다. 제작비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검증된 공식에만 의존하려 한다. 새로운 시도보다는 보수적이고 안전한 작품만이 기획 단계를 통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도구의 활성화가 상상력의 외주화를 불러왔다.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고 촬영이 편해지면서, 오히려 독특한 상상력이나 연출은 사라지고 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그 기술에 의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비슷비슷한 결과물들만 양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세 번째는 사회경제적 요인이다. 경제 성장이 멈추고 청년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는 ‘레트로 마니아’라는 책에서도 지적된 현상이다. 힘든 시기일수록 사람들이 돌아보는 과거의 지점이 점점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1990년대에는 1960년대를, 2000년대에는 1980년대를, 2020년대에는 1990년대를 그리워하는 식이다. 청년들에게 현재는 생존의 공간이고, 미래는 불안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과거뿐이다. 적어도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에 확정적이고 안전하다. 거기서만큼은 결과를 알고 있으니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
결국 요즘 청년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이들은 오히려 시대의 피해자에 가깝다. 지금 재미없는 작품들만 나오는 것도 하나의 과도기 현상일 뿐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터넷 1세대들이 그랬듯이 AI 1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이 기존의 미디어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듯이, AI 역시 창작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 변화는 분명 더 큰 작품들과 상상력의 진보를 인류에게 선사할 것이다. 지금의 레트로 의존 현상은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일지도 모른다.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전까지, 우리는 과거의 유산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청년 세대를 탓하지 말자. 이들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현재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고, 미래가 충분히 희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시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