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쓰지마
현시점에서 “너 진짜 힙하다”는 말은 칭찬인지, 아니면 정중한 결투 신청 표현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힙이라는 단어 자체가 힙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시발, 오죽하면 미스터트롯에도 ‘힙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냐. 나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된 걸까?
1) ‘힙’이라는 개념이 혼란스러운 첫 번째 이유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언어에 의존하는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코딩을 해봤는데, 그때 느낀건 컴퓨터는 존나게 멍청하다. 생성형 AI가 도입됐다고 해서 달라진 게 없다. 내가 의도한 걸 알아먹으려면 10번은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힙’과 같은 미적 판단이나 감성적 개념은 컴퓨터보다도 더 모호하고 표현하기 어렵다.
무튼 언어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입력의 질을 높이는 것이 해답이다. 그래야지 ‘힙’에 대한 토론이 더 잘 이뤄지겠지. 고로 내가 덜 멍청해지기 위해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더 정교한 언어 능력, 더 넓은 맥락 이해, 더 세밀한 표현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2)’힙’의 현재적 의미는 인스타그램의 등장과 궤를 같이한다. 인스타그램은 이전의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과는 다른 시각적 감성과 미적 기준을 제시했다. 초기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은 상대적으로 동질적인 집단이었고, ‘힙’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어느 정도 형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층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합의는 붕괴되었다.
사용자 풀이 넓어질수록 ‘힙’의 기준은 파편화되었다. 이제는 길가의 휴지조차 누군가에게는 힙한 소재가 될 수 있다. 분명 ‘힙’이라는 단어가 남용되면서 피로도는 올라갔지만 이는 개인의 미적 취향과 감성이 다양해졌음을 보여주는 긍정적 현상이기도 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힙’의 정의에 대한 완전한 합의는 불가능할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LCL처럼 모든 개체가 하나가 되거나,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처럼 정신적으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핸드폰을 보며 발라드 버스킹을 하는 사람을 보고 ‘힙하다’고 말하는 친구야. 제발 나에게만은 ‘힙하다’고 하지 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