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살해한 소년

후루야 미노루 <두더지> 리뷰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두더지>(히미즈)는 “평범하게만 살고 싶다”는 소년 스미다의 소망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강변의 보트 대여점에서 어머니와 살아가던 그는 특별한 야망도 없이 평범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어머니는 집을 떠나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는다. 빚까지 남긴 탓에 야쿠자에게 시달리면서 결국 스미다는 아버지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만다. 이 시점까지만 봐도 평범이라는 소망이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미다는 작품 내내 부조리와 맞부딪힌다.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가 부모의 폭력과 가난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아무리 원해도 평범한 일상은 주어지지 않는다. 친구들의 격려나 주변 어른들의 조언도 그를 구하지 못한다. 오히려 “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어” 같은 말은 스미다에게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떠올리게 하며 현실과의 간극을 더 크게 만든다. 이처럼 <두더지>는 선의가 반드시 구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평범조차 계급과 조건을 요구하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그냥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당시 일본 사회는 버블 붕괴 이후 청년 세대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잃어버린 시기였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조차 경쟁과 부담을 요구했고, 누군가는 출발선조차 밟지 못한 채 낙오됐다. 스미다가 맞닥뜨린 잔혹한 현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이 점에서 작품은 지금 한국 청년 세대의 현실과도 닮아 있다. 안정된 직장, 내 집 마련, 무난한 일상을 꿈꾸지만 대부분의 청년에게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두더지> 속 스미다가 결국 무너진 이유가 단순한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평범을 유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일본 청년만의 비극이 아니라 지금 한국 청년들에게도 깊이 와 닿는다.



<두더지>는 아사노 이니오 같은 동시대 만화가와 봉준호 감독에게 영향을 주었고, 소노 시온 감독에 의해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네 권 완결이라 만화카페에서 짧은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평범을 갈망하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두더지>는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잔인하지만 정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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