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JTBC 제보게시판에 "통계청 직원이 가계부를 써서 제출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통보 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처음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다. 통계청 조사원이 정보 수집 실적을 높이기 위해 한 실언이거나, 제보자가 뭔가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돌아서 곱씹어보니 이게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고 있었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을 높이고 정부 지원금 등을 늘려서 가계 소득이 늘면 그만큼 소비가 늘어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초기 경제 정책이었다.
이 가계 소득이 늘어났는지 아니면 줄어들었는지 조사하는 게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다. 그런데 2018년엔 하위 20%의 소득이 세 분기 연속 줄어든 것으로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러자 야당에선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문재인 정부는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야당은 문재인 정부가 통계청장을 바꿔서 원하는 경제 성장 수치를 얻으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런 시기라 통계청 관련 제보라면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통계법을 찾아보니 국가통계조사에 응답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이 있긴 했다. 통계청 조사원의 말이 완전히 허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매출을 숨기려 하는 기업을 처벌하기 위해서 부과한 적은 있어도 개인에게 매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보자를 직접 만나보니 김모씨는 맞벌이를 하는 회사원이었다. 어느 날 통계청 조사원이 찾아오더니 새해부터 매일 가계부를 써서 한 달에 한 번씩 제출하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김씨가 해보니 하루에 약 1시간씩 걸리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요즘 카드 사용 내역은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받는데, 손으로 가계부를 쓰고 일일이 영수증도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조사원에게 못하겠다고 말 했지만, "거부하면 과태료 대상이다"는 통보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매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제보자의 눈높이에서 생각해보니, 국가 통계 조사를 위해 내가 매일 저녁 1시간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화가 날 것 같았다. 이렇게 강제로 숙제처럼 하게 되면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게 되고, 미뤄뒀다가 한꺼번에 대충 적어서 낼 가능성도 높았다. 이런 결과물이라면 신뢰도가 높지 않을 텐데 국가 경제 정책을 결정할 때 기초가 되는 통계로 쌓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통계청에 왜 이런 강제적인 방법을 쓰게 됐는지 물어봤다. "조사 대상자들이 응답을 거부하는 비율이 매년 높아져서 그동안 안 하던 강제 수단을 쓰기로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통계 조사의 응답률을 높이려면 조사 대상자가 응답을 하기 좋게 혜택을 더 크게 주거나, 손으로 영수증을 붙이는 일이 없도록 전산화를 먼저 했어야 했다.
이를 비판하는 기사가 나간 뒤 시민들이 엄청나게 공감을 했고,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행정조치다. 강압적인 방법은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뒤이어 새 통계청장도 이 문제를 사과하면서 앞으로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익명 인터뷰는 주로 인터뷰이 어깨 뒤에 카메라를 두고 기자를 찍으면서 진행한다.제보자 김모씨처럼 강제적인 조사를 요구받은 시민은 7200가구나 됐다. 용감한 제보자 김모씨의 분노를 그의 눈높이에서 듣지 않고 흘렸다면, 이들은 매일 밤 1시간씩 영수증을 가계부에 붙이며 화내고 있었을 것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래 도서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네이버 책>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