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진실 추구는 눈 감고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

12. [생각하다] - 진실은 최소 4차원

by 송승환

"기자가 진실을 추구해야지!"

뉴스 댓글에서 자주 보이는 시민의 호통이다. 기자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진실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진실 추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드는 예시가 눈 감고 코끼리 만지기다.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채로 다리를 만지면 기둥이라고 말하고, 상아를 만지면 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자가 사건을 취재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가장 큰 사건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다. 하나씩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 사건이 얼마나 클 지,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전개가 될 지 등 전체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그런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가 본 사실이 전부인 것처럼 기사를 쓰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기둥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기사가 된다는 것이다.


여러 큰 사건의 시작과 마무리 그리고 뒷이야기까지 겪어보니, 진실은 최소 4차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건은 10차원이 넘는 복잡계이다. 그 모든 모습을 이해하려면 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3차원의 세상에 살면서 2차원의 기사를 쓴다. 그러니 복잡한 진실을 추구하려는 기사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취재가 어려운 것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다. 취재와 기사가 불완전하다는 한계를 알고 진실에 대해 쓰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다.


진실의 파편이 공개돼 있다고 해서 진실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2019년 7월 JTBC 탐사팀에 있을 때 국회의원들이 보유한 비상장 주식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반인은 구하기도 어려운 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국회의원은 4명 중 1명이 가지고 있었다. 비상장 주식은 국회의원이 재산 신고를 할 때 실제 가치가 아닌 액면가로 신고할 수 있어서 재산을 적게 보이게 할 수 있다.

회의록.JPG 탐사보도 취재를 할 때는 많은 시간을 공개된 정보의 옥석을 가리는 데 할애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재산신고 내역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된 자료다. 하지만 파편화된 진실을 누군가 모아서 문제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수면 아래에 조용히 숨어 있다. 이런 조각들을 모아서 시민들에게 바치는 게 기자가 해야 하는 일이다.


불완전한 기사를 보완하기 위해 기자들이 만든 도구가 있다. 공정성, 균형성, 독립성, 객관성 등 저널리즘의 여러 원칙들이다. 완전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최선의 진실, 확보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도입한 개념들이다.


뒤에서 이야기할 저널리즘의 여러 기술(테크닉)들은 진실을 기록하기 위한 도구들을 설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도구들을 사용할 때 어떤 제약들이 있는지, 진실 추구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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