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쓰다] - 보도의 제1 원칙 : "알면 알린다"
박영수 특검팀의 국정농단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를 앞두고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현직인 박 대통령을 어떻게 조사할지를 두고 청와대와 특검팀의 신경전은 굉장히 팽팽했다. 2017년 2월 10일 전후로 조사할 거라고 알려졌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2월 7일 저녁 한 방송사 8시 뉴스에서 <[단독] 대통령 대면조사 9일…靑 비서실서 조사>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다. 특검팀이 수사 상황을 외부에 유출한 것이라면서 대면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결국 특검팀은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를 하지 못한 채 수사 기간이 종료됐다.
이 보도는 기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논란이 됐다. 일부 기자들은 "대면조사 날짜를 알았더라도 수사 진행에 영향을 주는 보도는 미뤘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기자들 사이에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날짜와 장소를 미리 알아도 압수수색 집행이 시작되기 전까지 보도를 미루는 관행이 있다. 보도를 미리하면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처럼 대면조사 날짜를 알았더라도 그것의 성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특검팀의 수사가 잘 되길 바라는 여론이 컸던 상황이라 이런 목소리는 더 힘을 받았다.
하지만 보도의 결과를 예측해서 기사를 내보낼지 말지를 판단하면 언론이 매개자(미디어)가 아닌 행위자가 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쉽게 말해 축구 경기에서 심판 또는 해설자가 경기에 개입해 선수처럼 뛰거나 편파 판정을 할 수 있다는 우려다.
나는 당시 후자를 주장했고 지금도 마찬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최종 역할은 매개자이자 전달자이다. 언론은 현장에서 행위자들이 만들어내는 일들을 왜곡 없이 시민들에게 전달해주는 연결 통로다. 그런데 보도에 따른 결과를 예측해서 보도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시민들이 전달받는 뉴스는 언제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이 때때로 뉴스를 감추고 왜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민들은 뉴스를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보도의 제1 원칙은 "알면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내용은 반드시 알리겠다는 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그걸 지키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줄 때, 시민들은 비로소 언론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고 믿고 볼 것이다.
수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보도를 '예외적으로' 자제 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압수수색을 하기도 전에 계획을 언론이 먼저 공개하면 증거인멸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히 예측할 수 있는 보도의 부작용이다. 하지만 이런 엠바고(보도 유예)는 예외적으로 사안마다 판단해야 할 일이지 모든 사건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것은 아니다. '알면 알린다'는 게 보도의 원칙이고 엠바고는 예외적인 경우인데, 거꾸로 엠바고를 원칙으로 여기고 '알면 알린다'를 옵션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엠바고 준수가 제1 보도 원칙인 것처럼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다.)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는 특검팀에서 하지 못했지만 결국 이 수사를 이어받은 검찰이 성사시켰다. 당시 "수사가 망할 것"을 우려해 보도를 유예해야 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수사는 검찰의 뜻대로 마무리가 됐고 박 대통령은 구속됐다. 현장에선 "수사는 생물과 같다"는 말을 자주 쓴다. 어떤 원인이 어떤 결과를 최종적으로 이끌어낼지는 예측할 수 없단 뜻이다. 그러니 언론은 기사에 따른 결과를 예측해 보도 여부를 결정해선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알면 알린다"는 원칙을 지킨다는 신호를 시민들에게 주는 것이 언론이 장기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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