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3일 보도국 철야 당번이었던 나는 멍하니 TV를 보다가 속보 자막을 발견했다. "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사망"이란 내용이었다. 당시 저녁 메인뉴스가 진행 중이던 시간이라 문화부 자리로 달려가 이런 내용의 속보가 나왔다고 보고했다. 문화부에선 "이미 처리 중"이라고 했고, 이날 뉴스 말미에 앵커가 이 소식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는 오보였다. 배우 신성일씨는 아직 사망하지 않았었다. 신씨가 위독하자 그의 가족들이 한 병원의 장례식장에 예약을 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한 언론사가 사망했다고 기사를 쓴 것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허겁지겁 따라서 썼다가 줄줄이 오보를 냈다. 신씨 가족에게 확인 전화를 했을 때 "아직 안 돌아가셨는데요!"라면서 굉장히 불쾌해 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난다.
미드 '뉴스룸'에서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하원의원이 총격에 사망했다는 속보가 다른 언론사에서 뜨자, 스튜디오 안에 있던 경영자가 빨리 사망 소식을 따라서 보도하라고 앵커를 재촉한다. 그러자 앵커는 "사람이에요. 사망 선고는 의사가 하는 거지 뉴스가 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그렇다면 뉴스는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뉴스는 "의사가 사망 선고를 했다"고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인터넷 뉴스 댓글을 보다 보면 "이것도 기사냐"는 시민의 비판을 자주 본다. 이때 시민이 기사와 기사가 아닌 것을 구별하는 직관적인 기준은 뭘까. 사실 확인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이다. 사실 확인도 갖춰지지 않은 글은 기사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일반 시민이 쓴 글과 기자가 쓴 기사를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도 객관주의의 규율을 따랐는지 여부이다. 언론사에 입사하면 수습기자 기간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배우는 8~9할은 대부분 눈앞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객관적인 방식으로 요약해서 글을 쓰는 훈련이다.
수습기자가 사고 현장에 가서 "사망자가 3명입니다"라고 보고 하면 선배 기자에게 지적을 받는다. 사망자가 3명인 게 아니라 "경찰이 사망자가 3명이라고 발표했다"가 객관적인 전달 방식이다. 사망자가 몇 명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고, 기자는 경찰의 조사 결과를 전달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하는 훈련을 1~2년 하다보면 "이제 기자답게 말하고 쓸 줄 알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자는 기자가 어떻게 객관적일 수 있냐고 묻는다.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가 없다. 하지만 객관적인 도구로 글을 쓰는 것은 가능하다. 없는 것을 추가하지 않기, 어디서 어떻게 보고 들었는지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기, 전문가에게 확인 받기, 남의 글을 베끼지 않고 스스로 취재에 의지하기, 가정하지 않기 등의 원칙을 지키면 객관적인 방식을 따른 글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글쓰기를 했다는 것 만으로 진실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나 주관적인 인간이 작성한 글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보완하는 것이 뒤에서 이야기할 편집자의 역할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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