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찾다] - 방송 기사는 '그림'이다
2018년 8월 JTBC 보도국으로 소속을 바꿨다. 중앙그룹은 신문·방송 통합으로 기자를 뽑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신문과 방송을 오가며 둘 다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은 다른 회사와 비교할 수 없는 굉장한 장점이다. 신문 기자와 방송 기자는 완전히 다른 직업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겪어보니 정말 다른 점이 많았다.
신문 기자와 방송 기자 일을 구분하는 가장 큰 질문은 "그림이 있나?"이다. 신문 기자는 사진이 없어도 글만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 하지만 방송 기자는 그림, 즉 영상이나 사진이 없으면 기사를 제작할 수 없다. 검은 화면에 목소리만 나갈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신문 기자로 일을 하다가 방송으로 넘어오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일이 그림을 챙기는 것이다.
2019년 2월, 제보 게시판을 보다가 "앞에서 달리던 BMW 차량의 선루프가 날아 왔어요"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첨부된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 정말 "펑" 소리와 함께 앞서 가던 BMW 차량의 선루프가 공중으로 떠올라 뒤따르던 차량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깜짝 놀라 “엄마야! 꺅” 소리 지르는 음성도 생생했다.
발제를 하자 팀장이 묻는 첫 마디는 역시 "그림 재밌니?"였다.
"그림 좋아요. 한 번 보실래요?"
영상을 본 팀장은 "어머, 뭐 이런 일이 다 있니?"하면서 두세 번 더 돌려본 뒤 "발제하자"고 했다.
글로 적으면 기사가 안 되는 간단한 해프닝에 그치지만, 생생한 영상이 있다면 훌륭한 방송 기사거리가 된다. 이 때문에 방송 기자는 사건·사고가 생기면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나 건물의 CCTV를 먼저 확보하려 사력을 다한다. 아무리 사실 관계 취재를 열심히 했어도 영상 없이 '앙꼬 없는 찐빵'을 보고한다면 불호령이 돌아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이 방송 뉴스의 보도 가치를 판단하는 최우선 기준이 되면 CCTV 저널리즘, 관음증 저널리즘이 돼 버린다. 요즘엔 거의 모든 곳에 차량 블랙박스, CCTV, 휴대전화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전엔 볼 수 없었던 제보 영상이 많이 들어온다. 그런데 많은 방송사가 자극적인 영상을 틀었을 때 순간적으로 시청률이 높아지는 맛에 취해서 점점 더 자극적인 영상을 틀고 싶어 한다.
2020년 8월 경기도 남양주에서 차량 인질극이 발생했다. 지나가던 차량 운전자가 범인이 칼로 피해자를 위협하는 모습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을 한 방송사에 제보했다. 이 방송사는 이 제보 영상을 스릴 넘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도했다.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 처리를 했지만 아슬아슬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이튿날 피해자 측에선 방송국에 강하게 항의했다. 아무리 모자이크 처리를 해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인지 알아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 방송 리포트가 긴박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어떤 보도 가치가 있냐”고 따져 물었다. 방송 뉴스에서 그림이 중요하지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넘어서지 않는 선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피해자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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