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과 마라톤은 뿌리가 같다?!

09. [생각하다] - 뉴스-민주주의-시민의 삼각관계

by 송승환

저널리즘을 지탱해오고 힘을 실어준 뿌리에는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를 한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에도 "자유로운 언론활동을 통해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표현이 있다. 정치학에서 쓰는 용어를 빌리자면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저널리즘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여태 저널리즘에 대해 얘기하면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도 못했다. 지금까지 말했던 기자가 하는 일이 곧 저널리즘이긴 한데, 교과서에 나오는 저널리즘의 정의를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공적으로 중요하거나 관심사가 되는 현재의 일들을 규칙적으로 생산하고 배포하는 사업 또는 행위"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한 정보와 논평을 널리 퍼져 있는 익명의 수용자에게 정기적으로 알리는 일련의 제도"

"공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간주 되는 현재의 일들에 대한 정보와 논평"


각 정의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뒷부분이다. 앞쪽의 수식하는 표현들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뒷부분을 보면 저널리즘을 '사업 또는 행위', '제도', '정보와 논평'으로 다른 관점에서 정의하고 있다. 기자나 언론사가 하는 행위도, 언론 제도도, 결과물인 정보와 논평 그 자체도 모두 저널리즘이란 것이다. 기자가 하는 일이 곧 저널리즘이란 말이 썩 틀리진 않는 듯하다.


다시 민주주의와 저널리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인류사에서 근현대 사회는 민주주의를 단단하게 만드는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저널리즘도 함께 성장을 했다. 뉴스와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 공동체가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인가? 민주주의를 정치 체제로 사용하지 않는 사회에선 저널리즘이 유지될 수 없는지, 저널리즘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저널리즘은 시간과 문화를 넘어서 알고자 하는 욕구 본능이다"라는 주장이 있다. 저널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능하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특수한 역할이고, 애초에 저널리즘은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구에서 생겨났다는 말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알아야 생존할 수 있었다. 산 넘어 다른 부족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래 전쟁 준비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면 두렵고 불안했다.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 때 마라톤 전투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아테네 병사가 승리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42.195km를 쉬지 않고 뛰어가서 "우리가 이겼다"라고 알리고 죽었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소식을 알리고 싶고, 알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을 잘 나타내는 이야기다.

마라톤.jpg 마라톤 전투

이런 알고자 하는 욕구에서 시작한 게 뉴스와 저널리즘이라는 시각이 있다. 욕구 단계의 저널리즘이 인쇄 기술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만나면서 제도로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이 단순히 민주주의의 수단이었다면 하나의 생명체처럼 지금까지 성장하고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저널리즘이 욕구의 수준에서 머물렀다면 사회의 한 기둥인 언론 제도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뉴스와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의 삼각관계는 이처럼 상호보완적이다.

삼각관계.JPG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아래 도서 정보를 참고해 주세요.


<네이버 책>

<교보문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번 중 9번은 실패하는 '뻗치기'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