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유일한 취재 방법은 만나서 물어보는 것이다.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처럼 강제로 불러내서 조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물어보려면 일단 만나야 한다. 그런데 보통 핵심 취재원들은 쉽게 만나주지 않는다. 먼저 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 하고, 연락처를 확보한 뒤, 만나게 될 때까지의 공을 들이는 과정이 취재의 절반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나기 어려운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많이 쓰는 취재 방식 중 하나가 '뻗치기'이다. 뻗치기란 특정 장소에서 상대방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대개 상대방의 집이나 회사 문 앞에서 그와 마주칠 때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추우나 더우나,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만나지 못 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만에 하나 마주쳐서 이야기를 나눌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다.
2017년 12월 9일, 문재인 정부의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아랍에미리트(UAE)를 특사 자격으로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순방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청와대는 UAE와 레바논에 파병 중인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임 실장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작 일주일 전에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이 이미 UAE와 레바논에 가서 파병 장병을 격려하고 왔다. 정치권에선 청와대의 설명이 수상하다며 임 실장이 비밀 임무를 하고 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처음 궁지에 몰린 사건이었다.
이때 제기됐던 가설 중 하나가 UAE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와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다는 의혹이었다. 원전 계약을 따내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UAE에 군사 지원을 약속하는 이면 합의를 맺었다는 것이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찾아보니 이명박 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태영 전 장관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들을 통해 연락처를 구해 전화를 여러 번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집 주소를 알아내야 했다. 김 전 장관의 이력을 찾아보니 현재 한국전쟁기념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 이걸 실마리로 김 전 장관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을 알아냈다. (구체적인 취재 기법은 공개하기 어려운 점을 양해 바란다) 그가 만나줄 지는 모르겠지만 무작정 찾아가보기로 했다.
광역버스와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김 전 장관에게 문자를 여러 통 보냈다. 묻고자 하는 내용을 보내기도 하고, 언제쯤 도착할 것인지, 심지어 국방부 장관을 하던 시기에 내가 육군에서 복무했던 사소한 인연(?)까지도 보냈다. 답장은 없었지만 그가 읽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녁 7시 쯤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다.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창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무작정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날씨가 춥지 않았다. 아침까지 있어 볼 작정이었다. 김 전 장관에게 집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놓고 한 시간이 흘렀다. 혹시나 해서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철컥' 문이 열렸고 김 전 장관의 얼굴이 불쑥 나왔다.
"무슨 일이요?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 합시다."
아무래도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안으로 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이날 김 전 장관과 1시간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김 전 장관은 작심한 듯 묻는 모든 질문에 대답해줬다. 이튿날 이 내용을 보도한 기사가 나간 뒤 '임종석 비서실장의 UAE 방문 의혹'은 '이명박 정부의 비밀 군사협정 체결 사건'으로 뒤집혔다.
운이 좋아서 성공담을 말 하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뻗치기 취재는 실패로 그친다. 기다려서 만난다 해도 상대방이 취재를 거절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설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엔 사생활 보호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에 무리하게 뻗치기 취재를 시도해서도 안 된다.(이에 대해선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하지만 몇 번을 실패해도 뻗치기를 시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누구나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김 전 장관처럼 누군가는 말을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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