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기자가 앞으로도 필요해?

07. [생각하다] - 취재 경쟁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by 송승환

기자가 앞으로도 필요한지 얘기해보려면 ‘기자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부터 정의를 해야 한다. 취재 하고 기사 쓰는 게 기자이지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수단의 관점에서 기자를 설명한 것이다. 달성하려는 목적의 관점에서 볼 때 기자의 역할은 ‘진실 확인자’와 ‘의미 부여자’로 나눌 수 있다.


진실 확인자는 사실을 검증해서 알리는 역할을 말한다. 어떤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은 사실 확인 경쟁을 하면서 매일 검증된 새 팩트를 쏟아 낸다. 취재한다는 표현은 사실인지 확인한다는 의미일 때가 대부분이다.


의미 부여자는 발굴한 사실에 맥락을 넣어서 지식이나 문화로 만드는 일을 한다. 흔히 해설 기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어떻게 의미 부여를 하는지를 보면 그 기자와 언론사의 편집 방향과 품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사회 모든 곳에서 기자의 진실 확인과 의미 부여 작업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를 가장 처음, 극적으로 느낀 곳은 첫 출입처인 검찰청이었다.


검찰을 출입하는 많은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새로운 사실이 확인 되면 [단독]이라고 매시간 기사를 쏟아냈다. 다른 기사들과 딱 한 줄만 다른 이런 기사를 '한 줄 단독'이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남들보다 몇 분 먼저 알아내 먼저 [단독]을 붙이는 것은 '시간차 단독'이라고 불렀다.


단독 보도를 하는 것을 언론계에서는 은어로 '타 언론사에 물을 먹인다'고 표현한다. 거꾸로 타사의 단독 기사를 재확인해서 받아쓰기를 하는 기자는 '물을 먹었다'고 한다.


검찰청 기자실에서 서로 물을 먹이고 먹고, 이를 정리해서 해설 기사를 쓰는 일을 매일 반복하던 어느 날 도대체 저널리즘은 어디 갔나 싶었다. 공적 가치의 달성이나 시민에 대한 봉사 등 교과서에서 배운 말은 없고 오로지 단독 경쟁에만 빠져서 눈이 빨갛고 피로에 쩌든 기자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게 기자가 하는 일의 전부라면 미래엔 기자가 없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쓴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사안이 다 정리된 뒤 정확하게 전달해도 되는 걸 굳이 시시각각 경쟁 하는 건 무의미하게 보였다.


회의감을 안고 관성에 따라 일하던 어느 날, 같은 법조팀의 K선배가 실종 됐다. 취재원과 점심을 먹으러 나간다더니 오후 2시까지 전화도 받지 않았다. 오후 3시쯤 만취한 K선배의 전화가 왔다.


"화장실에서 잠깐 전화 걸었어. 오늘 검찰이 '문고리 3인방' 집을 압수수색 했는데 성과가 없었대. 내가 기억을 잃을 것 같으니 네가 확인해서 기사로 써 줘."


문고리 3인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을 말한다. 이 때는 국정농단 사건의 초기였는데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수사를 못 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화를 끊고 서울중앙지검의 공보를 담당하는 차장검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그를 찾아가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그 안에서 만났다.


“오늘 문고리 3인방 집을 압수수색 했나요?” 평소처럼 물었는데 당당하던 그가 새내기 기자였던 내 눈을 피하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방 문 앞까지 쫓아가며 대답을 요구하자 그는 "맞다"고 어렵게 답하고 들어갔다.


검찰 입장에선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최측근을 압수수색 하는 것이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집을 뒤져놓고 이렇다 할 증거를 못 찾았다면 이는 숨기고 싶은 일이다. 기자가 확인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굳이 알리지 않았을 압수수색인데, 결국 기사로 나가게 됐다.


그때 취재 경쟁의 가치에 대해 새로 생각했다. 기자들이 무한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권력에 대한 감시라는 저널리즘의 한 원칙이 자연스럽게 달성된다는 것이다.


권력 기관은 언제나 시민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유리한 정보는 공개하고 불리한 건 숨기려 한다. 숨기려던 정보는 기자들의 끊임없는 취재 경쟁으로 새어 나오게 된다. 그 결과물이 단독 기사다. 기자들의 충혈 된 눈은 권력 기관에겐 감시의 눈으로 보일 것이다. 이 때문에 권력자가 함부로 말 하거나 행동 하지 못하게 된다.

검찰에 출석하는 피의자를 기다리는 취재진

마치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고 생각했다. 기자들이 각자의 욕심껏 취재하고 경쟁할 때 공공선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이를 '사상의 자유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이는 일정한 사상이 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자들이 모두 단독 보도를 하고 싶단 욕심 때문에 취재를 하지 것은 아니다. 때론 공공선이나 민주주의의 달성을 목적으로 취재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7:3 정도 되는 것 같다. 남들보다 먼저 기사를 쓰고 싶은 경쟁심이 7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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