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찾다] - 국회 회의록은 진주 섞인 모래사장
2018~2020년에 관심을 갖고 취재했던 분야 중 하나가 전동킥보드다. 길을 다니다 보면 전동킥보드가 급증한 것을 한 눈에 체감할 수 있고 너무나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곳곳에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킥보드를 보면서 기존 교통 인프라와 새 이동수단이 충돌하는 지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고민이 됐다.
2018년부터 안전 무법지대에 있는 전동킥보드가 위험하다고 기사를 써왔다. 전동킥보드는 원래 오토바이와 같은 원동기장치자전거로 분류됐다. 새 이동수단을 담을 법적 틀이 없다보니 어울리는 않는 옷을 입혀놓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오토바이처럼 운전면허가 필요하고, 도로로 달리고, 안전모를 써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전동킥보드는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등 젊은 층이 주로 이용했는데 이들 대다수가 운전면허가 없었다. 전동킥보드를 타려고 헬멧을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업체가 대여해주자니 분실이 우려됐다. 법과 현실이 전혀 달라서 생기는 현상이었다. 사실상 법을 아무도 안 지키고, 단속도 아무도 안 하면서 사고는 늘어만 갔다. 점점 사망·중상 사고가 언론에 보도됐고, 그 피해자는 나이 어린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국회는 2020년 5월 전동킥보드에 대한 안전규제를 더 풀어주는 법을 통과시켰다. 운전면허가 없어도 되고, 만 13세 즉 중학생도 탈 수 있으며, 안전모를 안 써도 처벌을 안 하는 방향으로 바꾼 것이다. 법이 통과된 뒤부터 전동킥보드 사고는 더 늘어났다. 사망 사고도 잇따랐다. 시한폭탄을 바라보듯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와 국회가 규제를 완화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 계속해서 언론에 보도됐다.
도대체 왜 이런 법이 통과됐는지 의문이 들었다. 법을 통과시킬 때 국회에서 의원들이 무슨 논의를 했는지 찾아봤다. 국회 회의록은 진주가 섞인 모래사장과 같다. 누구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찾아 볼 수 있지만, 너무나 방대한 대화 내용이 기록돼 있어서 살펴볼 엄두가 잘 안 난다. 하지만 그 속을 뒤져보면 귀중한 단서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때 국회의원 184명 중 183명이 찬성했고 1명이 기권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 기권한 의원이 단서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전화해 물어봤더니 "실수로 투표에 참여를 못했다"고 했다. 진주인 줄 알았는데 꽝이었다.
국회 본회의로 법안이 넘어오기 전에 논의하는 상임위원회 회의록도 뒤져봤다. 여기에 단서가 있었다. 전동킥보드 규제를 풀어주는 법안이 올라왔는데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토론도 없이 이걸 통과시켰다. 위원장이 "이의 없으십니까"하고 물어보니 의원들이 "예"라고 대답한 게 전부였다.
이 법안을 낸 의원과 이때 회의에 참석했던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국회의원들은 "실제로 안 타봐서 잘 몰랐다" "자전거랑 다른 거냐" "얼마나 빠른지 몰랐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잘 알지도 못하고, 찾아보지도 않고, 업계에서 4차 산업혁명을 위해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하니 모두 동의한 것이다.
시민 대다수가 걱정하는 전동킥보드 규제 완화법이 이렇게 허술하게 통과된 거라고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를 했다. 국회의원들의 귀에 들어가서 반성하고 고칠 때까지 반복해서 지적했다. 시민들이 분노했고 결국 국회의원들은 전동킥보드 이용에 관한 안전 규제를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고쳤다. 기사를 통해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 매우 짜릿한 순간이었다.
국회는 우리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법을 만들고 고치는 곳이다. 많은 시민들이 국회를 욕하고, 언론도 국회의원을 비판한다. 하지만 비판에서 더 나아가서 언론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시민에게 쉽게 설명하고 알릴 의무가 있다.
국회 회의록은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보물창고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이면의 대화는 놓친 채, 겉으로 보이는 국회의원의 발언만 쫓아다니는 게 정치부 기자의 현실이다. 이제라도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 받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 샅샅이 뒤져보고 알리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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