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취재원이 썸을 타도 되나?

24. [생각하다] - 기자와 취재원의 독립성

by 송승환

언론사에 입사한 뒤로 정당과 시민단체에 대한 후원은 모두 끊었다. 정파성이 있는 정당의 당원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공익적 목적의 시민단체나 복지단체에 대한 후원까지 끊어야 하냐고 묻는 동료도 있었다.


기자가 시민단체 후원을 하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취재 과정과 기사에 대해 사소한 오해라도 주고 싶지 않아서 후원을 중단하게 됐다. 특정 시민단체를 후원하기 때문에 이런 성향의 기사를 썼다는 식의 선입견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시민단체들도 정파적 성격이 있는 곳이 다수 있고, 때론 이들이 취재원이 되기도 한다. 후원을 하다보면 이들과 동화되거나, 비판해야 할 때 제대로 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취재원과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 조금 과한 조치처럼 보여도 후원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취재원은 기자가 정보를 얻는 출처이다. 출입처의 일상적인 소식부터 결정적인 단독 기사까지 대부분 취재원으로부터 나온다. 취재원과 어떻게 밀접해지는가가 기자의 주된 과제 중 하나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독립성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동료 기자가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다. 자신의 출입처에서 취재원과 ‘썸’을 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를 더 유지하면서 이 출입처에서 계속 취재 활동을 하는 게 바람직한지 묻는 고민이었다. "당연히 안 되지"라고 답했는데, 안 되는 근거를 생각해보니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많은 기자들이 취재원과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는 술이다. 핵심 취재원이 될 만한 직책에 있는 인물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중년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저녁 때 함께 술을 마시는 일이다.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고, 취재원과 내밀한 대화를 나눌수록, 여기서 기사가 되는 정보도 많이 얻어낸다. 술을 자주 마시다 보면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독립성을 잃고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경우도 잦다.


스테이트 2.jpg 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 캡처. 워싱턴 글로브 지의 기자 칼(왼쪽)은 스타 정치인 스티븐과 오랜 친구이자 기자-취재원 관계이다.


그런데 취재원과 술이 아니라 이성적인 매력으로 친해져서 밀접한 관계가 됐을 때, 이를 바탕으로 정보를 얻어낸다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할 근거가 있을까. 쉽게 말해서 술 마시고 친해지는 건 되고, 이성적 매력을 통해 가까워지는 것은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술인지 매력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취재원과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지가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다. 기자 중에 배우자가 정치인이거나 판·검사인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정치부나 법조팀은 맡지 않는 게 관례다. 이해충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정보로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판사가 사건을 맡을 때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사건이라면 스스로 회피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에게 기사거리를 많이 주는 정치인, 판·검사와 술친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이들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면 그 출입처에서 나와야 한다. 취재와 상관없이 더 깊은 술친구가 되는 것은 비난할 이유가 없지만, 취재와 베스트 프렌드는 함께 갈 수 없다.


앞선 동료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서로 호감을 갖고 개인적인 이익을 챙겨주는 관계가 됐다면, 취재할 때 지켜야할 거리두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상당이 높은 상태다. 스스로 거리두기가 자신이 있다고 해도, 내가 쓴 기사에 대해 주변에서 불필요한 의심을 가지고 해석하려 할 것이다. 썸 관계를 더 발전하고 싶다면 스스로 해당 출입처에서 나오는 게 취재원과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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