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생각하다] - 뉴스 가치를 결정하는 편집회의
"너는 밥 먹고 똥 싸는 것도 뉴스야?"
"너는 이게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해?"
수습기자 시절 없는 아이디어를 쥐어짜내서 발제를 했다가 부장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무엇이 뉴스가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것도 보통의 시민과 기자를 구별하는 역량 중 하나다.
저널리즘 교과서에선 영향력이 있는지, 시의가 맞는지, 유명한 사람인지, 가까운 이야기인지, 갈등이 첨예한지 등을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이걸 외우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적용하는 기자는 드물다. 직관적이고 경험에 의존해서 "이야기가 되는지"를 판단한다. 앞서 설명한 발제와 채택, 누락을 반복적으로 거치면서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경험적으로 몸에 학습되기 때문이다.
이런 뉴스 가치 판단을 매일 종합한 것이 신문 지면계획 또는 뉴스 큐시트(방송 순서)이다. 이걸 살펴보면 그날 언론사에서 어떤 뉴스를 더 강조하고, 어떤 뉴스는 뺐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동안 인터넷 뉴스 댓글에서 "장자연 사건은 왜 다루지 않느냐"는 지적이 자주 보였다. 유명 연예인의 열애설이 터지면 "또 어떤 정치적인 사건을 가리려고 이런 뉴스를 터뜨리냐"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이건 모두 언론사가 뉴스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에 시민이 불만을 제기하는 표현들이다.
어떤 뉴스가 배제된 이유에 대해 때론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제기가 되는데, 그건 시민들에게 뉴스 제작 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기자들이 어떤 아이템을 발제하고 그 중 어떤 뉴스가 왜 잡히거나 빠지는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기자들이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 퍼지고 시민들은 쉽게 믿는다.
그런데 사실 기자들도 매일 열리는 편집회의에서 어떤 뉴스가 왜 강조되거나 축소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팀장급 이상만 참석하는 편집회의에서 매번 어떤 의견이 오가는지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채택 혹은 누락이라는 결과만을 가지고 그 의미를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투명함을 해소하기 위해 JTBC 뉴스룸에선 한동안 평기자들이 편집회의를 참관하는 제도가 운영되기도 했다.
편집회의에서 결정을 주도하는 편집국장이나 보도국장의 지시가 직관이나 감각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기자들도 있다.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사실은 수십 년간 신문 지면계획과 방송 큐시트를 학습해온 국장이 머릿속에 있는 빅데이터로 판단한 결과물이다. 어떤 뉴스 아이템을 봤을 때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 몸에 쌓여있는 것이다. 막힘없이 나오는 지휘가 누군가에게는 본능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매일 편집회의에서는 포괄적이고 비중에 맞는 뉴스를 만들기 위한 의사결정을 한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 자원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편집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이 오갈 수는 없다. 일일이 지시하지 못한 내용들은 그 언론사의 오래된 관행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시스템이 아닌 관행이라고 표현한 것은 부정적인 측면을 집중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사가 따르는 관행 중 하나가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주로 정치부 기사에서 등장하는데 정치인 A와 B의 발언에 갈등을 붙여서 정쟁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사회부 기사에서는 어떤 사건을 선악 구도로 단순화 하고, 범죄자를 더 나쁘게 과장하는 관행이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런 뉴스 제작 과정과 관행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런 뉴스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언론이 대기업이나 정부를 비판할 때 자주 요구하는 것이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의사결정이 가장 불투명한 곳은 언론사다. 시민 사회의 수준에 맞게 저널리즘이 한층 더 성숙해지기 위해선 부분적으로나마 뉴스 제작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고, 시민의 비판을 수용해 이런 관행을 바꿔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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