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쓰다] - 있는 그대로만 써라
2018년 8월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JTBC 보도국으로 인사이동을 한 뒤, 빨리 좋은 기사를 발제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있을 때였다. 중앙일보 정치팀에서 국회를 출입하면서 취재해온 아이템이 뒤늦게 완성돼 마침내 단독 발제를 하게 됐다. 국회 예산정책처장 A씨가 나랏돈으로 외유성 해외 출장을 다녀온 의혹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A씨는 세금 2600만원을 들여서 1주일 동안 해외출장을 다녀왔는데, 호텔에서 밥 먹은 것을 업무보고로 둔갑시켰다. 더 찾아보니 국회 예산정책처 직원들이 해외 공기업 시찰을 나간다는 명목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온 뒤 출장보고서는 다른 공공기관의 자료를 베껴서 대충 낸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이런 증거를 모아서 A씨가 얼마나 부도덕한 짓을 했는지 온 힘을 다해 표현해 기사를 작성한 뒤 부장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부장에게 크게 혼났다. 불필요한 수식 표현을 모두 빼란 지시였다. 당시 C부장은 "정말 나쁜 짓을 한 사람이면 이렇게 몰아가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사실을 얹어놓기만 해도 누구나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게 가장 뼈아픈 기사다"라고 말했다.
다시 기사를 건조하게 썼더니 정말 그의 문제되는 행적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언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했고, 어떤 말을 했는지 그저 사실만 서술해 주면 됐다.
취재를 열심히 한 소재일수록 기사를 쓸 때 지나치게 힘을 줘서 쓰는 실수를 기자들은 종종 한다. 그러다보면 추측성 표현, 과장, 가정이 기사에 담기기도 한다. A를 한 뒤 C를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중간에 B도 당연히 했을 것처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취재를 해보면 사람들은 그렇게 합리적으로만 행동하진 않는다. A 다음엔 당연히 B를 했을 것 같지만 D나 Z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문에 모르는 사실에 대해선 넘겨짚지 않고 겸손해야만 한다. 겸손한 취재란 모르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묻고, 쓸 때는 아는 만큼만 덧붙이지 않고 쓰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있는 그대로, 겸손하게 쓰기"는 내 기사 쓰기 원칙 중 하나가 됐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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