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생각하다] - 언론이 정보를 통제하던 시절은 가고 있다
요즘 유튜브를 통해 차트 역주행을 하는 곡이나, SNS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학폭 고발’ 논란의 공통점이 있다. 기성 언론이 주목하기 전에 스스로 유행이 퍼졌다는 것이다.
과거엔 어떤 현상이 주류가 될지 안 될지를 기성 매체가 판단했다. 신문 기자나 방송 PD가 주목해서 자주 보여주면 그게 곧 유행이 됐고 이들의 눈에 들지 못하면 뜨기 어려웠다. 이런 기성 매체의 정보 통제 역할을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유행을 시킬지 말지 결정하는 문지기 역할을 한 것이다.
이전에 설명한 뉴스의 발제, 채택, 누락이 이 게이트키핑을 하는 과정이다. 신문이라면 어떤 이슈를 몇 면에 어느정도 분량으로 배치할 것인지, 방송이라면 몇 번째 순서로, 몇 분 동안 보도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어떤 주제가 얼마나 화제가 될 지를 기성 매체가 직접 결정해온 것이다. 전혀 화제가 되지 않던 일도 신문 1면이나 방송 톱뉴스로 며칠 연속 나오고 나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제가 되곤 했다.
이런 걸 뉴스의 의제설정(아젠다 세팅, agenda setting) 기능이라고 부른다. 특정 이슈를 빈번하고 눈에 띄게 보여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슈가 다른 이슈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미디어는 의제설정을 통해 없던 이슈도 만들어낼 정도로 그 효과가 강력하고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역주행 현상에서 보듯 이제 그 관계는 쌍방향적으로 바뀌었다. 시민들의 관심이 알고리즘에 반영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 언론은 그걸 받아서 뉴스로 만드는 현상이 보편화 됐다. 이처럼 어떤 게 화제가 될지 말지 결정하는 뉴스의 정보 통제자(게이트키퍼)로서의 역할은 과거보다 상당히 약해졌고, 그 권한은 대중에게 상당히 넘어갔다.
뉴스가 어떤 이슈를 화제로 만드는 또 다른 방식은 프레이밍(framing)이다. 프레이밍은 우리말로 풀어보면 틀 짓기이다. 어떤 현상을 모두 나열해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특정 부분에 액자를 씌워서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틀을 씌운 부분을 중심으로 설명하면 시민들에게 더 사안을 쉽고 단순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언론사가 원하는 부분만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생략하면서 어떤 사회 현상을 특정한 방식으로만 해석하도록 여론을 이끌어 가기도 한다. 이는 언론이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형적인 방식 중 하나이다.
이와 비슷한 기교로 프라이밍(priming) 효과도 있다. 프라이밍은 우리말로 점화 효과라고 부르는데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특정 이미지가 먼저 연상되도록 불을 붙인다는 뜻이다. 최근 성폭력 범죄를 보도할 때 프레이밍과 프라이밍 효과를 바람직하게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과거엔 성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의 이름을 따서 'A씨 사건'이라고 많이 불렀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엔 "A씨가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만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요즘엔 거꾸로 가해자의 이름을 따서 'B씨 성폭력 사건'이라고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B씨가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으로 시민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 몰래카메라(몰카)를 불법 촬영물이라고 부르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몰카라고 불렀을 때 중대 성범죄라는 인식이 쉽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불법 촬영물이란 명칭을 쓰는 것이다.
언론의 게이트키핑 역할이 과거만큼 절대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지만 여전히 여론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언론의 권한은 시민의 관심과 감시가 늘면 점차 줄어들 수 있고 다른 플랫폼과 대중에게 권한을 넘겨주게 된다. 언론이 의제설정, 프레이밍 등과 같은 기교들을 여론을 호도하는 방향이 아닌 바람직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감시와 견제가 앞으로 더 늘어나야만 한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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