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 보도는 만루홈런 아니면 삼진

32. [생각하다] - 탐사보도 저널리즘

by 송승환

고속도로를 달리다 터널에 들어가면 과거엔 주황색 조명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요즘엔 이 조명이 대부분 LED로 바뀌고 있다. 이 LED 조명은 환경에 따라 원격으로 밝기를 조절할 수도 있고, 고장이 나면 자동으로 경고를 띄우는 스마트 가로등이다. 이런 기능을 하기 위해선 스마트 가로등에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칩이 부품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국 도로의 조명을 이런 스마트 LED 가로등으로 교체하는 사업은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가 주도하고 있다. 스마트 가로등에 들어가는 통신칩의 규격도 도로공사가 정한다. 그런데 이 통신칩의 규격이 특정 업체만 맞출 수 있는 조건이라면 어떨까? 이 업체가 전국의 가로등 사업을 독점하고 큰돈을 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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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핵심 부품을 만드는 기업의 주인은 도로공사 사장의 가족들이었다. 도대체 몇 단계를 거쳐서 이권을 숨겨놓은 것인지 계산조차 어려운 사건이었다. 업계 내부를 오랜 기간 깊숙이 조사하지 않고는 드러내기 어려운 비리였다. 이런 취재를 언론에선 탐사 보도라고 부른다.


매일 나오는 보통의 기사와 탐사 보도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탐사는 권력에 대한 감시,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조사를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하는 취재다. 어떤 보도에나 이런 취재가 들어가지만 탐사 보도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그 수준이 훨씬 깊게 들어가야 한다.


보통 언론사에서 탐사 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팀을 꾸리면 가장 실력이 좋은 기자들을 불러 모은다. 탐사 보도에는 특별한 경험과 취재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탐사 보도의 결과물은 한 장의 문서나 제보자의 말 한 마디로 완성될 수 없다. 조각난 수많은 정보들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기자가 맡아야만 한다. 게다가 탐사보도는 파장이 큰 만큼 명예훼손 등 법적 위험도 관리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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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 보도는 원래적 의미(오리지널)의 탐사 보도, 해석적 탐사 보도, 수사에 관한 탐사 보도로 나뉜다.


오리지널 탐사 보도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마치 수사 기관처럼 위장 취재나 잠복 감시 등도 하고 드러나지 않은 제보자나 피해자를 찾아내기도 한다. 오리지널 탐사 보도의 결과물은 공식적인 수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해석적 탐사보도는 이미 공개된 방대한 자료를 엮어서 더 높은 차원의 사실과 관점을 만들어 내는 보도다. 대표적으로 전수조사를 해서 보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주간지나 월간지처럼 긴 호흡으로 취재할 수 있는 곳에서 주로 한다.


수사에 관한 탐사 보도는 준비 중이거나 이미 진행되고 있는 수사에 대해 깊이 있는 취재를 하는 경우다. 주로 사건팀이나 법조팀에서 담당한다. 단순히 수사 기관의 발표를 받아쓰는 수준을 넘어서서 수사 기관보다 한 발 먼저 취재에 나서서 수사 기관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탐사 보도가 이렇게 장점이 많지만 많은 언론사에서 탐사 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팀을 운영하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자들을 출입처에서 빼내서 한 달에 한 건을 쓸까말까 한 팀으로 보내는 건데 회사 입장에선 엄청나게 비효율적인 조직이다. 만루 홈런이 나올지, 땅볼이 나올지, 삼진을 당할지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루 홈런이 나온다면 언론사의 신뢰도를 단번에 올려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비용만 몇 배로 늘어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탐사 보도는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기를 거듭해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 때 탐사보도팀을 꾸리는 언론사가 급증했지만 최근 다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탐사 보도는 국가와 사회의 역사에서 변곡점이 되는 시기에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금도 어느 언론사의 탐사보도팀은 사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문제를 수면 위로 쑥 꺼내기 위해 골방에서 비밀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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