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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환 Jul 15. 2021

사생활을 침해하는'뻗치기' 취재 해도 되나?

38. [생각하다] - 사생활 침해와 취재 윤리

기자가 자주 사용하는 취재 방법 중 하나는 뻗치기이다.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집이나 사무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방식을 뻗치기라고 한다. 언론계뿐만 아니라 경비업계 등에서도 한 곳에서 계속 서서 지키는 것을 두고 이렇게 부르는 걸 들어봤다.     


낮은 연차의 기자일수록 뻗치기 취재를 자주 한다. 핵심 취재 대상에게 확인 취재를 위해 반드시 말을 들어야 하는데 전화를 받지 않거나, 연락처를 알 수 없을 때, 집 주소를 안다면 선배 기자들은 후배들에게 찾아가서 뻗치기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아파트 문 앞, 계단, 복도 등 온갖 군데에서 시간과 날씨에 상관없이 취재 대상을 만나기 위해 기한 없이 기다린다. 운 좋게 마주쳐도 아무런 말을 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가끔 찾아온 기자에게 사건과 관련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취재원도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파트 공용 공간, 빌딩의 복도 등도 엄연히 사적 영역이다. 그 공간을 권한이 없는 사람이 차지하고 불편을 준다면 경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집안에 있는 사람이 나가기 불안하게 지키고 있거나 초인종을 눌러대는 것도 부적절하다.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유명인의 아파트 단지엔 수많은 카메라와 취재 차량 등 취재진이 북적거리면서 불편을 만든다.     



과거엔 기자가 취재 활동을 위해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시민들도 감내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 시민의 눈높이가 달라졌다. 취재 목적이라도 개인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할 수 없고 불편을 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늘었다.      


훨씬 오래 전에 기자 생활을 한 선배들은 경찰서에서 공문서를 가져오거나,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한다. 지금은 큰일 날 소리다. 요즘엔 기자가 전화를 하면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냐"면서 따지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취재 윤리에 대한 기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취재 윤리란 말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어떤 취재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바람직한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숭고하고 대단한 원칙도 있겠지만 구체적이고 사소한 행동 규칙이 대부분이다. 어떤 장소에 들어갈지 말지, 지금 물어볼지 말지, 공개를 할지 말지 등을 결정한 때 판단의 기준이 되는 규칙들이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과 실천요강에선 "공익이 우선하지 않는 한 모든 취재 보도 대상의 사생활이 침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적혀있다. 취재 상황에서 시민의 알 권리와 사생활 침해의 이익을 비교해보라는 것인데 막상 현장의 여러 딜레마 상황에선 판단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 언론사 데스크에서 취재 지시를 할 때 과거의 취재 윤리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지시해서 현장 기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선배들이 뻗치기를 시킬 때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다른 언론사 기자가 있는지" 여부이다. 무작정 단독 취재에 성공해오라고 등을 떠미는 데스크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면 현장 기자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이렇게 사생활 침해를 하면서 취재를 한 경우 기사를 쓸 때 취재 방식의 한계점을 밝혀주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진실을 취재하기 위해 다른 수단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사생활 침해를 하게 됐고,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했으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시민의 의견을 반영해 고쳐나가겠다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기자가 취재 활동으로 시민에게 불편을 끼쳐도 양해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시민들이 기자의 취재 활동을 암묵적으로 동의해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결과물인 기사를 보도할 때 한계점을 밝히고 사과와 양해를 명시적으로 구하는 것이 앞으로 시민과 언론이 만들어 나갈 신뢰 관계일 것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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