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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승환 Aug 03. 2021

세월호 참사 그 이후 재난 보도는 달라졌나

42. [생각하다] - 재난보도 취재윤리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 보도와 취재 윤리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됐다. 언론사들도 반성하면서 취재윤리 강령이나 재난보도 준칙 등을 점검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7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재난 보도를 할 때 취재 윤리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정도의 의식은 생겼다. 하지만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선 나아진 게 거의 없다.      



2018년 12월 강원도 강릉의 한 펜션에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일산화탄소에 질식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사고 현장과 피해 학생들이 다닌 학교로 취재를 나섰다. 생존자, 유가족 등에게 무리한 인터뷰 등을 요구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는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언론사 데스크도 마찬가지였다. 무리한 취재를 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는 말되 다른 언론사보다 부족하게 취재는 하지 말라는 모호한 지시가 내려왔다. 현장 기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장례식장이나 학교에서 누군가 한 명 나올 때마다 취재진은 서로 눈치를 봤다. 누군가 마이크를 들고 따라 붙는 순간 우르르 모두 달려들었다. 그렇게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와 똑같은 보도참사는 반복됐다. 앞으로 어떤 재난 상황에서도 반복될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 보도 참사를 겪은 일부 시민들은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취재는 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재난 상황을 취재하고 기록해야만 한다. 그래야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기자들에게 가장 힘든 취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장례식장 취재라고 말할 것이다. 가장 큰 슬픔에 싸여 있는 유가족에게 질문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그럼에도 질문을 하는 건 그 사건을 기록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유가족과 생존자 중 누군가는 말하고 싶어 한다. 잃어버린 내 가족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말해야만 버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피해자 중 누군가는 평소에도 사고 현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등 겪어본 사람만 아는 부조리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취재를 거부했을 때, 때론 욕설과 울부짖음을 들어도 정중히 사과드리고 다시 취재를 요청하지 않는다면 이를 두고 취재 윤리에 어긋났다고 손가락질 할 사람은 없다. 보도 참사는 이들에게 사연을 맡겨놓은 것처럼 마이크를 들이밀 때 발생했다.      


언론사 데스크가 피해자의 사연을 구해오길 원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연의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사연 하나로 피해자에게 성금이 모이기도 하고 정부가 나서서 제도를 고치는 등 변화를 만드는 것은 사건보다 사연이었다. 이를 경험한 데스크는 과거처럼 취재해서 사연을 당연히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현장 기자를 재촉한다. 재난 상황 속에 있는 현장 기자가 마감 시간과 데스크의 사연 요구에 쫓기다보면 취재 윤리는 뒷전으로 가고 사연을 찾아 달리는 경주마가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정비한 재난보도 준칙에는 언론사가 기자들을 대상으로 재난 보도에 대한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하고 전담 기자를 기르는 등의 의무가 적혀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언론사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정기적으로 재난 보도에 관한 취재 윤리를 교육받았다는 기자는 주변에서 거의 본 적이 없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게다가 재난 취재 현장에는 대부분 저연차 기자들이 투입된다. 이들은 딜레마 상황에서 취재 윤리와 취재 성과를 저울질 할 만큼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다. 곤란한 상황일수록 취재 지시를 한 데스크의 목소리만 생각날 뿐이다.     


재난 현장은 매우 혼란하고 급박해서 원론적인 취재 윤리를 안다고 해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에 맞는 그 현장만의 취재 윤리가 생기고 이를 여러 언론사의 취재진이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현장을 지휘할 수 있는 경험 있는 기자가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한다. 재난 전담 기자라면 가장 좋을 것이다. 데스크가 사연 취재를 재촉할 때 "스톱"을 외치고, 취재진이 유가족에게 마이크를 들이 댈 때 "여러분, 잠깐만요"라고 한 마디 할 수 있는 기자를 현장에 보내야 한다.      


뉴스 앵커가 시청자에게 직접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 언론사의 기자들은 오늘은 사연 취재를 하지 않았다. 아직 피해자와 유가족이 질문을 받을 만큼 회복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뉴스가 다소 건조해도 이 점 양해 바란다"고 앵커가 시청자에게 말한다면 이를 이해하지 않을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재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 대한 보호도 부족하다. 비극적인 현장과 장례식장에서 여러 날을 취재하면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기자도 사람인지라 비극 앞에선 눈물이 나고 마음이 찢어지는데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을 붙잡아 가면서 며칠간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 트라우마가 생긴다. 기자들마다 감수성이 모두 다른데 누군가는 더 힘들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재를 마치고 제대로 된 회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기자라면 당연히 강해야 한다고 여긴다.     


재난 취재 현장에서 피해자가 기자들에게 험한 말을 하면서 취재를 거부하는 일은 그동안 기자들이 쌓아온 업보 때문이다. 취재를 당하면 도움이 되기는커녕 상처를 받고 피해를 본다는 경험을 시민들에게 심어줬기 때문이다. 재난 보도 현장에서 피해자, 유가족, 억울한 사람 모두가 기자를 먼저 찾도록 하려면 기자들이 그동안 잘못한 시간만큼 취재 윤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들이는 게 선행돼야만 한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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