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체부에 돌아가 직원들 얼굴을 보면 울어버릴 것 같아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쁜 사람'으로 찍은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장이 문재인 정권의 문체부 2차관에 임명되고서 내게 한 말이다. 이 말은 그대로 이날 기사 제목으로 올라갔고 여러 언론에서 인용했다. "울어버릴 것 같다"는 한 마디를 이끌어 내기까지 그에게 각고의 노력을 들였다.
노태강 차관은 국정농단 사건에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승마로 특혜를 받는 일을 막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찍혀서 좌천된 인물이다. 30년간 체육행정을 해 온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문책성 인사이동을 당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이 "그 사람 아직도 있어요?"라고 질타하자 노 차관은 쫓겨나듯 공직을 떠났다.
2017년 4월 11일 노 차관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국정농단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했다. 2시간가량 정유라씨의 승마 특혜에 대해 설명했고, 최순실씨가 흥분해 노 차관에게 따졌지만 침착하게 대응했다. 잠깐 쉬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노 차관이 가는 길을 따라갔다. 이미 검찰 수사가 마무리 되고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면서 취재 열기는 시들했었다. 노 차관을 따라가는 기자는 나뿐이었다.
그는 법원 내 흡연구역에 가서 담배를 한 모금 피웠다. 잠시 기다렸다가 인사를 하고 오늘 증언대에 선 감회를 물었다. "최씨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받다가 지난 일이 생각나 울컥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흥분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해 차분하게 말하려 노력했습니다." 그에게 증언을 마친 뒤 근처에서 인터뷰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법정을 나선 뒤 교대역 근처의 조용한 카페에서 그와 한 시간 가량 인터뷰를 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이라 더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노 차관은 마음 속에 맺힌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랐던 거 같았다. 그는 문체부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울컥 하면서 목이 멨다. 평생을 몸 담아온 조직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6월 9일 청와대에선 문체부 2차관으로 노태강 전 국장을 임명했다. 발표가 나자마자 노 차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축하드립니다. 발표 전 청와대로부터 연락은 받으셨나요?
"여러 곳에서 축하해 주고 있는데 아직 정식으로 연락 받은 것은 없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저도 뉴스를 보고 소식을 들었는데요. 믿기지 않습니다. 얼떨떨합니다."
-문체부에 돌아가시면 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 장관님이 새로 임명되면 정책 의지를 잘 받들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기서 전화를 끊기엔 아쉬웠다. 전화를 하나마나 한 형식적인 질문과 답변이었다. 그래서 앞서 노 차관을 인터뷰 했을 때를 떠올려 마지막 질문을 했다.
-문체부에 돌아가시면 사랑하는 동료, 직원들, 체육인과 다시 일 하시겠네요. 다시 회사에서 서로 얼굴을 보면 어떨 것 같으세요?
"다시 문체부에 돌아가 직원들 얼굴을 보면 울어버릴 것 같아요."
가슴이 뜨거운 '나쁜 사람' 노태강 차관에 맞춤형 질문이었다. 취재원과 인터뷰하기 전 보통 어떤 내용을 질문할지 미리 정리하는데, 여기에 인물 맞춤형으로 각색을 한 번 더 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현장에서 상대방의 말 하는 습관이나 성향을 파악해서 즉석으로 바꾸기도 한다.
인터뷰는 질문과 답변이 전부가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기사를 돋보이게 하는 한 끗 차이는 정보 전달이 아닌 감정의 전달이다.
노 차관과의 전화 인터뷰 이후에 취재 대상을 끝까지 따라다니는 습관도 생겼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져 있을 때는 준비된 말만 하던 취재원이 무대 뒤에서 진짜 속마음을 내비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책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에 담긴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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