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답게 기사를 쓰기 위해 처음에 했던 연습이 서술어에 밑줄 치기다. 사람들에게 방송기자나 아나운서를 따라해 보라고 하면 "현장에 나가있는 송승환 기자를 연결합니다" 같은 상투적인 표현과 특유의 억양을 따라한다.
신문 기사도 마찬가지다. 신문 기사는 주어와 서술어만 따라 써도 일단 그럴듯해 보인다. 수습기자 시절 신문을 펼쳐놓고 기사의 주어와 서술어를 형광펜으로 색칠하면서 노트북 메모장 한 편에 적어두기도 했다.
아래 기사는 2016년 8월 25일 중앙일보 12면에 실린 내 기사다. 당시 1진 선배인 현일훈 기자와 함께 취재해 썼다. 스트레이트 기사에 사용한 서술어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살펴보자.
<박수환, 민유성 친분 미끼…금호그룹서 10억 챙겼다>
홍보대행업체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박수환(58·여·사진) 대표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상대로 “산업은행 민유성 행장에게 잘 말해 주겠다”며 홍보비 명목으로 10억원가량을 받아 챙긴 단서를 검찰이 확보했다. (행위 주체가 검찰이라는 점을 강조)
이에 따라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24일 박 대표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변호사법 위반 혐의 외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도 적용했다.
검찰과 업계 등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08~2011년 자금난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던 금호그룹이 산업은행(채권단 대주주)으로부터 ‘경영 정상화’에 대한 압박을 받자 금호그룹 측에 “내가 민유성 행장과 친하다. 금호그룹의 사정에 대해 잘 말해 줄 테니 대신 우리와 홍보 계약을 체결하자”고 접근해 총 30억원짜리 홍보 계약을 따냈다고 한다. (범죄 혐의에 대해 기자가 직접 서술하지 않고 검찰과 업계의 입을 통해 전달한다)
하지만 이 시기는 산업은행이 이미 금호그룹에 대한 ‘처리 방침’을 확정한 상태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결국 민 전 행장에 대한 박 대표의 로비가 무산되자 금호그룹도 홍보비(중도금·잔금) 지급을 중단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금호그룹이 계약금 및 선금 형태로 10억원을 이미 지급한 상태였다”며 “이 금액이 사기 혐의에 포함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단 한 번도 기자가 단정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검찰은 또 박 대표가 남상태(66·구속 기소) 전 대우조선 사장의 연임을 위해 로비스트 역할을 한 정황도 파악했다. 소규모 홍보대행사인 박 대표의 뉴스컴은 그 대가로 남 전 사장 재임 때인 2009∼2011년 총 26억원의 홍보 계약을 따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검찰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수사 단계에서 유죄추정을 해선 안 된다. 혐의, 의혹, 정황 등으로 표현해야 한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표는 주요 기업을 상대로 일감을 수주할 때 민 전 행장은 물론 검찰 고위 간부 K씨, 유력 언론사 간부 S씨 등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는 점을 공공연히 과시했다. 검찰은 박 대표가 홍보 업무 범위를 넘어 론스타와 외환은행 간 분쟁, 효성가 형제간 분쟁,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둘러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삼성그룹 간 분쟁 과정 등에서 ‘송사 컨설팅’을 한 정황도 포착했다. 박 대표에 대한 구속 여부는 26일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현일훈·송승환 기자
전형적인 검찰 스트레이트 기사다. 주어는 검찰에 집중됐다. 기자의 판단을 적는 게 아니라 검찰의 말을 전하는 기사다. 단정적 서술어도 전혀 없다.
여러 기사의 서술어를 자세히 보면 '했다', '했다고 한다', '말했다', '주장했다', '전했다', '전해졌다', '알려졌다' 등이 자주 등장한다. 단정적 표현에 가까울수록 사실 확인이 잘 됐다는 의미이고, 간접적 표현을 쓸수록 아직 확인 단계에 있다는 뜻이다. 중앙일보에서는 ‘전해졌다’와 ‘알려졌다’처럼 추측성 서술어를 쓸 수밖에 없는 취재 단계라면 이 내용을 아예 기사에 담지 않기로 돼 있다.
서술어가 '했다'처럼 단정적으로 끝나는 문장이 많은 기사일수록 잘 취재된 기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취재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는데 모든 내용을 단정적으로 쓰는 건 위험한 기사다.
독자가 기사를 읽을 때 이런 점을 알고 서술어에 집중하면 기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기자를 준비하는 연습생의 경우 이처럼 자주 쓰는 주어와 서술어를 따라하면 금방 기사 문장 쓰기를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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