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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커라 Mar 30. 2023

얼룩말의 가출, 퓨마의 탈출

주토피아는 없다

얼마 전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 이야기가 언론에서 화제였다.

부모를 잃고, 옆 우리 캥거루와의 불화로 집(동물원)을 나와

서울 한복판의 도로와 골목을 누비다가

마취총 7발을 맞고 쓰러져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간 이야기.


난데없는 얼룩말의 출현에 도심 한복판에선 소란과 혼란이 있었고

어리둥절한 사람들의 모습이 밈으로 여기저기 '짤'을 생성하기도 했다.

(골목길 택배기사와 세로의 대치 장면이 특히나 유명)


기사들은 제목이 귀엽기까지 하다.


    “얼룩말 세로, 생포 뒤 이틀은 삐져있었다” 사육사가 전한 (조선일보 '23.3.28.)

캥거루에 맞는 '세로' 영상 본 네티즌들 "탈출할만 했네" [영상]


지금 해당 동물원은 세로를 보러 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세로 탈출 사건을 관심있게 본 나로썬

2018년 대전 퓨마 탈출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대전시민이었던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문자 한통을 받았다.


"대전동물원에서 퓨마 1마리 탈출, 별도 안내가 있을 시까지 외출을 자제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뭔 소리여... 처음엔 황당했다가 웃음도 나오고 대수롭지 않았는데 

점점 뉴스가 공포로 변하고 있었다.

퓨마의 행방이 묘연하고 시에선 계속 외출을 자제하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점점 사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고조되었다.


간신히 찾아낸 퓨마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기사에

대전시민들 모두가 정말 촉각을 곤두세웠던 며칠..


당시 퓨마는 갓 출산을 한 산모였고,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기 퓨마들이 동물원에 있었다.

산후우울증이나 기타 이유도 없었다.

당시 사육사 한 분이 실수로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고 출산한지 얼마 안된 어미퓨마는 영문도 모른채

열린 문 사이로 그저 나왔을 뿐이다.

평생 갇혀있던 그 문이 열려 있으니, 자연스럽게 나갈 수밖에.


그 퓨마의 결말은 세로완 전혀 다르다.


도심을 가로지르지도 않았고, 

인근 산 근처만 배회하던 그 퓨마는 마취총도 쉽게 듣지 않고, 

맹수라는 이유로


사살되었다.


갓 태어난 아기 퓨마들은 엄마 젖도 물지 못하고 어미품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엄마를 잃었고

죽은 퓨마는 그저 문이 열려서 나갔다가 목숨을 잃어야 했다. 

혹시나 있을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2011년 가을에 난 그 동물원을 업무차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 수의사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동물들이 워낙 좁은 공간에 있고 야생환경과도 맞지 않아

스트레스도 많고 우울증도 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툼도 많고 과격한 싸움으로 번져서 

다치는 동물이 많다고...


내가 갔던 날은 원숭이 한 마리가 수술대에 누워서 축 늘어져 있었다. 

역시나 다른동료와 싸우고 크게 다친 상황이었다. 


퓨마의 우리를 열고 간 사육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로의 탈출은 온통 귀여운 일탈로 도배되었고 세로의 사육사들은 근황을 비하인드 스토리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퓨마 우리의 문을 연 사육사분의 결말이 좋지 않음은 모두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무엇보다도 퓨마는 영문도 모른채 죽었다. 막 태어난 아기들을 제대로 품지도 못한 채.


퓨마가 만에 하나 보문산을 벗어나 인가로 진입하여 인명피해를 냈거나 

그럴 가능성이 큰 상황으로 국면이 바뀌었다면

더 많은 관계자들이 철퇴를 맞이했을 것이다.


퓨마 몸통에 총알 하나 박는게 그 편보단 나았을 것이라 판단한 것일까?


디즈니 영화 '주토피아'(2016)는 평화로운 동물세계를 위해

모든 맹수가 '타고난 공격성'을 거세(?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런 단어의 느낌을 받았다)하고 다들 별탈없이,

맹수와 초식동물들이 사이좋게 지낸다.


그런데 한 초식동물이 공격성을 억제시키고 있는 맹수의 공격성을 되살리면서

맹수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없애버릴 음모를 꾸민다.


마지막엔 모두 햅피~~하게 그 초식동물을 감옥에 잡아넣고 

룰루랄라 노래부르고 신나게 끝나지만

영화 보는 나는 썩 신나지 않았었다.


맹수의 공격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을 버려야만 평화가 유지된다면 '평화'라는 것이 사실 모순인 걸까?

나 역시 조직이나 소속된 곳, 가족관계 안에서 어떠한 소란과 분란을 두려워하는

초식동물의 마음으로 살고 있기에

평화의 가식성을 잘 알면서도 깨뜨리고 싶지 않아 발버둥친다(만..).


그 평화가 참으로 가식덩어리구나 싶다.


우리는 동물원에서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바라보는 인간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세상에 갇힌 우리를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하려나.


세로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어두운 우리 안을 배회하고 있을까.


그리고 퓨마(이름이 뽀롱이였다.)의 아이들은 지금 얼마나 성장해 있을까.

동물원 밖으로 영문도 모르고 나간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그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세로는 가출했고 퓨마는 탈출했다.

아니다.

세로는 탈출했고 퓨마는 문이 열려서 문 밖으로 나왔다.


세로가 뒷발로 인간 하나를 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퓨마가 마취총을 맞고 기절해주었다면 아기들과 함께 지금도 동물원에 갇혀서 멕아리 없이 살고 있을까.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세상이라는 우리에 갇힌 팔자좋은 한 인간의 밤을 어지럽히고 있다.

뽀롱이에게 왠지 미안한 밤이다.

세로는 지금 동물원 우리에서 어떤 기분으로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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