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2_트러블
나에겐 고말자씨라고 나이 어린 상사가 한 명 있다. 같은 직급이긴 하나, 나보다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나에게 선임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 처음 입사 때는 서로 잘 지낼 거라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나에게 커다란 돌덩이가 뒤통수를 강하게 내려치는 일로 돌아왔다. 처음 1년은 같이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가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나는 연초에 같이 바다를 보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가 말했다.
"이젠 탕비실 관리 안 하고 싶어."
"네?"
"커피 내리는 거, 퇴근 후 커피포트 설거지하는 거에서 손 떼고 싶다고."
"그럼 나는???"
나는? 그럼 나는? 그럼 나만 해? 같이 쓰는 공용공간 관리인데 왜 나만 해야 해?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너무 놀라서 "나는??"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가 뱉은 말들은 나에게 아주 큰 충격과 배신감을 주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나에게 밥을 사준다면서 "막내니까, 메뉴 선택권을 줄게."라는 말을 나에게 던졌다. 아니, 도대체 내가 왜 막내인가.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사회경력이 10년이나 있고 그보다 3살이나 많다. 이 대목에서 내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와 같은 '꼰대'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이 작은 회사는 성별에 따라 하는 일이 나뉜다. 남자들은 월요일마다 사무실 청소를 하고 여자들은 매일 탕비실 관리를 한다. 서로 할 일을 나누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 직원의 숫자는 고작 3명이다. 세 명 중에 한 명은 가장 연장자이고 직급이 높은 사람이라 그 사람이 먼저 탕비실 관리에서 손을 떼었을 거라 짐작한다. 그는 가끔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거나 설거지를 하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이다.
소심한 성격인 나는 그 말들을 들은 이후로 아침에 눈뜨고 밤에 눈 감을 때까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심지어 잠을 자다가 소리를 악! 지르며 깨기도 했다. 그 스트레스의 강도는 엄청났고 지금도 그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와 나는 그날 이후로 많이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이제 일상을 나누기는 커녕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 말을 하기 전까지 그가 나를 싫어하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고 나도 그를 싫어하게 되었으니 우린 결코 이전처럼 사이 좋아보이는 관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직급에 상관없이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은 나도 하기 싫다는 마인드로 일도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탕비실 설거지를 주로 맡아서 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려고 열심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 커피포트 하나, 컵 두 개 닦는 일이 뭐 큰일이라고.. 이렇게 생각해버리려고 한다. 나만 손해 보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분란은 싫고, 공평하지도 않는 것도 싫다. 그렇기에 나는 회사에서 몰래몰래 내 취미생활을 할 것이다. 버려지는 종이를 모아 노트를 만들고, 가끔 실팔찌도 꼬을 것이다. 이게 나만의 복수 방식이다. 누군가 이게 무슨 복수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풀린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어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상황이 있을 때 마다 '난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수차례 다짐한다. 그리고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