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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분이 좋아

by Song


아침에 은행 업무를 보러 갔다. 운 좋게 대기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번호표를 뽑자마자 곧바로 띵동- 벨이 울렸다.

배정된 자리에 앉아 담당자를 바라봤다. 앳되 보이는 인상의 어여쁜 분이었는데, 어쩐지 경직되어 보였다.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모습이 역력히 보여서, 그분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그러다 인터넷 뱅킹 아이디를 8자리 이상 만들라고 하기에 잠깐 고민하다 기존에 쓰던 아이디에 숫자 11을 붙였다. 그런데 11은 이미 사용자가 있다고 하기에 숫자 하나를 더해 111로 해달라고 했다.

"어? 아이디도 111인데 카드 뒷자리도 111이에요."라며 그분이 환하게 웃었다. 그 말에 기분이 부드럽게 몽글몽글해져서 "운이 좋네요."라고 대답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기분 좋게 웃었다. 업무를 마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넸다.

더없이 기분 좋게 집에 왔는데, 커피를 내리다 컵을 쳐서 와장창 깨뜨렸다.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기려고...' 하고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오로라 유리컵이라 순간 아쉬웠지만, 컵은 많고 나중에 더 예쁜 컵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모든 게 괜찮았다.


타인이 무심코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루를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짧은 순간의 다정함이 서로의 경직된 마음을 녹이고 팍팍한 세상을 잠시 잊게 해준다. 우리는 결국 그런 작은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나부터 세상에 조금 더 다정하려 노력한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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