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블리의 키워드로 영화읽기> l Major is History.
■키워드-정약전
○<자산어보>와 유학과 서학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의 서문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가 그 영화이다. 대학 시절, 정약전의 <자산어보> 관련 레포트를 읽으면 그가 유배지에 가서 어류를 관찰하고, 시조를 쓰며 무엇을 느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들은 때론 왕에게 신뢰를 받을 만큼 뛰어난 선비적 면모와 학문적 소양을 지녔지만, 시대의 흐름을 빗겨만나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고 그러한 역사적 기록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한국의 헌법 제20조에서 보장되는 종교의 자유 같은 것들이 조선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들이었으니, 새로운 종교와 사상을 받아들이려고 했던 그들은 유배를 가거나, 순교로 저항했다. 그렇게, 그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 얄궂게 느껴지는 가운데, 조선 정부에서는 오랫동안 지켜온 그들의 사상과 학문이 흔들리지 않도록 서학의 전파를 저지하며 일련의 처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정조는 약전을 많이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
벼슬하는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아느냐?
버티는 것이야
-<자산어보>, 정조-
▶출연: 정약전(설경구), 정약종(최원영), 정약용(류승룡), 가거댁(이정은), 변요환(창대)
순조 때에, 신하들은 사학이 조선시대의 근본 뿌리를 어지럽히니,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황사영 백서를 들며,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좁혀버렸고, 정약종을 죽인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유배지를 달리하여 정치와는 거리가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난다. 정약용은 강산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 길을 떠난다. 영화 속에서, 약전은 창대라는 청년을 만나 글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한다.
○성리학과 제사, 서학과 세례 l 명문 사대부 정약전과 명품 야망가 창대
약전: 글을 안 배운다니 이유가 무엇이냐?
창대: 나리는 사학죄인이니까요
400년을 이어온 주자의 나라에서
임금도 없고, 부모도 없고
제사도 안 모신다니
고것이, 역적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 거라?
지도 물들까 봐 거시기해요
-영화 속 창대와 약전의 만남 대사 中-
:글을 배울 것을 제안하는 약전과 그를 거부하는 창대
효가 근본인, 유교의 나라에서 '제사'를 금지하는 교황청의 명이 내려졌으니,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요시하게 여기는 조선사회에는 큰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제사라는 행위가 단순히 불을 지피 우고 조상들이 먹을 식사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행위도 있지만, 그 의식의 의미는 조상들에 대한 효를 기리며 그들의 존재를 한번 더 기리는 것이기에, 제사를 금하라는 당시의 명을 받아들이는 조선의 신자들 역시, 처음에는 위화감이 들었을 것을 짐작해볼 만하다.
한편 약용은, 유배지에 있는 형에게 편지를 종종 했고 자신의 저서 「목민심서」를 보여주며, 퇴고(?)를 요청하기도 하며 떨어져 있는 형에 대한 정을 그렸다. 자신보다도 더 깊숙한 섬에 들어간 형에 대한 걱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약전은 답장으로「송정사의」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고 어류도감으로 자신을 잊어보고 싶다며 동생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 마음을 먹은 약전은 창대와의 콜라보를 더욱 강화하고, 주자의 스승인 공자의 학문을 알려주기 시작하는데 창대는 이 낚시질에 걸려 약전의 말을 잘 따라준다.
영화 속에서 약전은 가끔 창대에게 천주의 아들 예수의 가르침을 전한다. 약전의 대사를 보면서 느낀 점은, 문화인류학 차원에서 보면 천주의 예수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고등 종교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뺨을 내어주면, 다른 한 뼘도 내어주라고 말하는 이웃사랑에 대한 헌신은 천주의 아들 예수 이전에는 없었으니 말이다. 공자위에 장자, 장자 위에 부처, 부처 위에 천주의 아들이라는 약전의 농담 속에 뼈가 있다. 이렇게 창대와의 대화 속에서 서로 지식을 주고받는 모습 속에서 선비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는 약전의 모습이다. 창대는 약전에게 짱둥어, 도미 등을 알려주며 바닷속 생물의 생김새와 습성, 특징을 재미있게 설명해준다.
○성리학과 다른 학문을 함께 배워보라고 권유하는 약전 l 전설의 물고기라 불리는 돗돔을 잡아온 창대
한편, 성리학을 배우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창대에게 서학과 기하학, 수리학 같은 것들을 함께 배울 것을 권하는 약전,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라는 말을 창대에게 전하는데, 창대는 앞으로 어떤 학문에 마음을 열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에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낚싯대를 새롭게 만들고 자기 키만 한 돗돔을 잡아 약전에게 보여주는 창대. 이 둘의 우정과 학문적 교류의 결실은 어떻게 나올까? 가 무진장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약전은 편지에서 제자 '창대'의 칭찬을 하기도 하였고, 「자산어보」라는 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약용에게 편지로 전한다. 약용을 만나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하며 시제에 맞춰 시조를 짓는 창대를 보니, 정약전의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기도 한다. 약전은 영화 중간에, 창대가 왜 책을 많이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목민심서의 초고를 보여주며 자신의 생각은 약용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당시 사회에는 더욱 급진적인 생각과 사상을 품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정약전은 약용보다도 더 급진적인 변화를 마주한 세상을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둘의 학문적 우정도 끝이 났고, 창대는 소과를 보고 한양에 가서 대과를 보기도 한다. 약전은 우이도로 이동하고, 창대는 나주에서 현실 정치의 단면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백성들에게 과도하게 부과한 세금, 아전들의 관습에 물든 정치행태, 백성들의 신음에 눈감고 귀 막은 목민관의 태도) 이에, 창대는 환멸을 느껴 백성들을 저지하는 한 사람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옥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왜 그랬냐고 묻자, " 배운 대로 못살믄, 생긴 대로 살아야지라 "라고 답한다.
창대가, 이렇게 정치에 뜻을 접고 우이도에 도착했을 때 약전은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창대를 마주할 수 없는 곳으로 떠나 있었다. 창대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약전을 생각하며 쓴 눈물을 흘린다. 스승은 그 자리에 없었지만, 스승이 쓴 <자산어보>가 그 자리를 대신 매우며, 창대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는 창대의 모습을 보면 스승과 제자의 정이 느껴지는 장면을 느낄 수가 있어 눈물이 나게 된다. 유배지에서 만난, 그 둘의 인연을 생각하며, 약전이 무서웠다고 말하는 흑산의 고독함을 느껴보며, 이 영화의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사물로 나를 잊어 볼 생각이네
-영화, <자산어보>, 약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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