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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Aug 31. 2021

'예쁘다'와 '아름답다.' : 그 미묘한 차이

송블리의 시사에세이 : 아름다움은 권력과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美라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 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웅장한 궁궐을 꼽으라고 하면, 클레오파트라가 살았던 이집트의 신전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권력과 힘을 지니고 있고, 그 힘에 따른 강한 파괴력을 지닌 것 같다. ‘미인박명’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아름다운 사람은, 일찍 죽는다는 말이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팔방미인으로 음악의 활동을 했지만 요절한 만큼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렇게 생을 일찍 마감하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이렇게 모순적인 모습을 많이 가진다.


美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인데 이렇게 강한 권력과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을 구별하게 된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눈이 너무 밝아짐에 따라서 갖게 된 축복이자 형벌 같은 것은 아닐까? 영화 <라푼젤>을 보면 늙은 마녀, 어머니는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이용하여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하고자 한다. 늙음, 아름답지 않음은 이렇게 젊음과 아름다움 앞에서 항상 설 자리를 잃는다. 왜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할까? 정말 궁금한 문제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예쁨과 아름다움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가장 원초적으로 설명하자면, 인간의 호르몬의 변화. 시신경에 들어온 아름다움이라는 쾌락으로 느끼는 도파민의 분비. 이런 정도로 아름다움에 대한 설명은 많이 들어왔다. 아름다움은 예쁘다와는 또 구별된다. 아름다운 사람이 예쁠 수는 있지만, 예쁜 사람이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시신경에 들어온 시각적 예쁨 이외에 무언가를 더 포함하고 있다.


마더 테레사같이 한 평생을 봉사로 살아온 사람을 지칭할 때 우리는, ‘예쁘다.’라고만 말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삶을 사셨다.’라고 말한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한테 우리는 ‘저 분 예쁘다’라는 표현보다, ‘저 분 아름답다’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아름답다라는 형용사에는 시각적인 무언가를 뛰어넘는 예쁨이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한 아름다움을 갖추려면?

많은 이들이 미와,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하여 노력 중에 있다. 뷰티 산업이 과거 어느 때보다 발전하였고 우리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많이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더 예쁘고 화려한 것들, 나를 치장해주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러한 아름다움이 내면과 합치되면서 발휘되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미는, 권력과 파괴력을 함께 지닌다. 그렇기에 그 것을 향유하는 많은 아름다운 이들은 아름다운 외면 뿐만이 아니라 그 힘을 다룰 아름다운 내면과 내공의 미를 길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보여지는 것 뿐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아름다울 준비가 되면 그 권력과 파괴력을 다스릴 수 있는 진정한 아프로디테가 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에 걸 맞는 자기 관리 차원의 외면적 관리와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하고 그 권력과 파괴력을 함께 다스릴 줄 아는 강한 영혼의 미소를 가진 사람들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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