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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Sep 16. 2021

어려운 지식 세계에서의 소통: Communication

송블리의 궁금증 l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는 것은?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려운 개념을 논한다는 것일까, 자신의 표현을 잘 전달한다는 것일까?


언젠가 한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있다가 든 생각이 있다. 학문에 있어서 박학다식하고, 인성도 좋아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수업인 선생님의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너무 똑똑하시고 공부를 깊게 하셔서 도통 학생들이 교수님의 높고 높은 철학과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점. 필기 잘하는 내가 들어도 도통,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고차원적인 용어와 설명이 주를 이루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녹음을 해서 다시 한번 들어 보았는데, 분명 한국어임에도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의 높은 수준이었다. 고차원적인 수준의 용어들과 철학들.


이후, 학생들이 교수님께 정중히 설명이 조금 어렵다고 우리의 입장을 설명드리니, 교수님께서는 ‘하하’ 웃으시더니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의 레벨을 낮춰주시고 우리에게 맞는 맞춤형 수업을 해주신 기억이 있다. 그렇게 우리에게 맞춰진 레벨의 강의를 통하여 그 학기 수업을 유쾌하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교수님께서는 방송에도 출연하시면서 강연하시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셨다. 강의실에서만 보았던 선생님께서 TV에 나오시면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글을 잘쓰고 말을 잘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사례로

어려운 개념을 논하는 것, 현학적인 철학과 지식을 잘 아는 것들만을 의미할까?

아니면 청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신의 표현을 잘 전달한다는 것을 의미할까? 에 대한 호기심.


말 잘하는 사람은, ‘초등학생’이 들어도 이해가 될 만큼의 쉬운 표현을 사용한다.


위의 궁금증에서 제시된 어려운 개념과 쉬운 표현 전달은 어떤 대척점을 지닌 문제가 아니라 상호보완관계를 지니면서 논의해야 할 문제인 듯하다.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그 개념을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굳이 쉬운 설명으로 재 풀이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차원의 문제이다. 또한 그것을 알아듣고 현학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의 소통의 장이라면 눈높이를 맞춘 표현의 변경의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청중들과 공감대를 얻어 논의를 확장하고자 하는 상황이라면, 쉬운 설명과 눈높이를 맞춘 표현의 변경으로 전달력이 잘 드러나는 다양한 예시들을 제시해줘야 할 것이다. 그 개념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가면서 청중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어려운 개념을 다루고 현학적인 지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농후하였다. 하지만 현대사회로 접어들 수록 어려운 지식을 갖춘 것 뿐만이 아니라, 쉬운 표현을 통한 소통능력까지 포함한 사람을 우리는 '글을 잘쓰는 사람,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라서 현대의 글잘하고, 말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정말 어려운 것들도 통통 튀는 전달력과 쉬운 표현력으로 전달하려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언젠가, 정말 말을 잘하는 연설가는 어린아이가 들어도 이해할 정도의 쉬운 표현을 사용하며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자신이 그 지식과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했다면 어려운 설명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쉽게 풀이된 해석으로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언젠가는 다른 교수님께서 지식은, 남 주기 위하여 배우는 것이니 배운 지식을 남에게 잘 전달하라는 사명(?)을 받은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지식을 배우기 위함은, 우리가 지적 갈증을 채우고자 하는 것에서도 시작하지만, 그 잘 배운 지식을 남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쓰고 싶은 마음도 우리 마음속에는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유창하고 유식한 우리들의 높아진 상식과 지식들을 우리들의 지적 갈증을 채우고자 하는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받아들일 준비된 타인을 위하여 사용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래서 친절한 ‘지식의 소통가’가 되어보는 것도 참 괜찮은 인생 아닐까? 이와 같은 태도로 우리가 소통방식을 갖춰본다면, 세상의 무지와 오해가 차츰차츰 제거되어 이전사회보다도 더 ‘소통’이 즐거운 세상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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