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븐니추억] Dear My 캠퍼스여, 오겡키데스카。


어느 덧, 시간은 11월이 되었고, 벌써 아침, 저녁으로는 겨울의 느낌이 충만하게 느껴지는 그런 가을날의 무드를 느낄 수가 있다. 그렇지만 아직 패딩을 입기에는 너무 더운 낮이기도 하다. 오늘은 문득 나의 그리운 신촌 시절이 생각나 브런치를 작성해본다. 그 전에.. 나같은 문과대 사람에게는 Chat-gpt가 무섭지 않다..(뭐?) GPT가 답변은 잘하지만, 나만큼 질문을 제대로 제시하거나 심층적인 질문을 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ㅎㅎ 사실은, 강력한 무기로 발전하고 있는 Ai의 발전이 조금은 염려되기도 하는 가운데, 이런 기술이 라떼엔 없었다는 게 아쉬움을 줄 정도로 그 '편리함'과 '신속성' 측면에서는 정말 큰 메리트가 있는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실시간 전자로 받아보는 '백과사전'의 느낌도 있고, 심심할 때 대화를 나누어주는 심심이 챗봇 같기도 한 것 같은 이 신문물은 여러가지로 내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문명의 발달이 없는 순간에도, 에세이 50점 만점에서 5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주셨다. 졸업식 때에는, 최우등 졸업은 아니지만.. 부끄럽지만.. 'Cum Laude'졸업을 했고, 아름다운 신촌의 추억을 많이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원조, 신촌 09여신, 송븐니의 학교 전세내며 여기저기 날뛰어다녔던 그 날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왜 자꾸 독후감을 쓰라고 그러시나요?! 정말, 어렵습니다앗! ㅠ.ㅠ


S대학교의 전통중 하나는, 아마도 문과대 학생들이 독후감 제출함에 독후감을 작성하는 숙제가 있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전통으로.. 제출 마감 시간 설정!! 그 시간을 놓치고 제출하지 못한다면, 학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아주 무서운 전통을 가진 학교에 나는 입학하게 되었던 점이 있다. 지금은, 1인 출판 시대가 되기도 했고, 여러모로 다양한 분야에서 글 잘쓰시는 한국 이웃작가분들이 많겠지만, 나같이 평범한 학생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조금 더 사고를 확장해서 글을 쓰는 과정과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글쓰는 연습을 하는 과목을 열심히 들어야만했다.


한편,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학교에 들어가면, '해리포터의 마법학교'처럼 마법을 배우고 빗자루를 타며, 즐거운 일 투성이로만 가득할 것 같은 환상을 품고 대학교에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과제가 지독하게 많아서 시험 기간만 되면 전공책을 달달달달 외우고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추억은 미화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그립고, 행복하고, 아련한 기억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그 날들은 정말 멋도 많이 부렸는데 매일을 드레스 같은 것들의 옷이나 미니스커트를 입고다녔다. 그러면, 같은 섹션의 동기분들이나 선배분들은 옷좀 여미라면서 자주 추워보이는 나를 걱정해주셨다. 그 당시에 나는, '노출증'이라는 자격증 1급이 있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공부하는 것을 즐겨해낼 수가 있었다.


때때로는 적응을 못하는 일들도 있었다. 대학교 저학년 시절에 나는 대학교 공부들에 대한 이해나 파악이 어려운 날들도 있었다. 음, 잘 들어보면 어느정도 알긴 하겠는데, '뭔 소리를 하는거야..?'라는 느낌을 받을 떄도 있었다. 그 이유는, 그동안 나는 대한민국의 딱, 정해진 한국식 공교육을 받고 있던 나의 수준에서, 갑자기 지식이 풍부한 교수님들의 어려운 용어나 말을 듣고 수업에 참여하자니.. '저게 뭔 말이여.. 같은 한국말인데도 말이 안통하는구먼..'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는 말이다. 그럴 때에는 븐니언니가 꿀팁을 알려주는데, 그.. 따스한 커피 한잔을 쭈욱 마시고, 강의실에서 히타가 나오는 제일 따스한 좌석으로 이동하여 잠시 눈을 부치고 스르륵 잠들고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살면 된다. *^^* 히히~ *^^* ㅎㅎㅎㅎ 그렇게 저학년 시절에도, 븐니는 독후감이라는 압박에 시달려 글을 작성해야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그 당시의 뇌는 쫄깃쫄깃 젊었으니까 이런 부분들을 어느정도 즐기면서 해낼 수가 있었다.


특히, <읽기와 쓰기> l <계열별글쓰기>라는 과목들이 있었는데, 이 과목들이 글을 쓰는 기본 문장기호나 규칙, 글쓰기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연습하는데 제격인 과목들로, 아마도 요람에 써져 있는대로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들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과목을 잘 수강하고 독후감도 제출하고 좋은 성과도 내었는데 나는 잘 해내다가도 가끔 삑사리를 내는 날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날들은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큰 사랑을 받곤 하는데.. 흐흠.. 어느 날 교수님으로부터 어떤 숙제를 받고 독후감 및 발표를 하는 날이었는데, 내가 그날 정말 어려운 주제라고 느껴져서 숙제를 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어려운 주제를 어려운 방법으로, 어려운 설명으로 나도 잘 이해가 안가는 말로 제3자의 화법으로 발표를 준비하고 진행해버린 날이 있었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발표를 시간이 없어서 해버렸는데, 교수님도 못알아듣고 나도 못알아듣고.. '이 발표'를 왜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는 상황이 발생해버렸는데, 모두가 이 발표를 진지하게 듣게 된 이상한 시간이었다..ㅠ


간략히 말하자면, 나는 그 당시 다른 과목들도 많이 듣고 있었고, 대학교 시절에 처음 적응을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발표를 엉망진창으로 준비하고 앞에 나가서 얼떨결에 나도 모르는 발표를 하게 되는, 추억의 역사를 쓰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주제를 끌고 가야하는데, 숙제인 만큼 안할수는 없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던 그 과제를 보고 있자니 등에서는 식은땀이 줄 줄 흐르기 시작했다. ^^; 그런데, 여기서 진짜 웃긴건.. 이미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오려던 찰나에..ㅎㅎ 선배님들로 추정되는 고학번의 무리들이 내 죽어가고 있는 발표주제를 어떻게든 심폐소생하기 위해 갑자기 자신들의 의견으로 그 어려운 주제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과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기 시작해주신 것이었다.. (핵존멋)


기존에 어린 시절까지만 해도 이런 그룹활동이나 집단토론의 경험보다는 개인전 플레이가 많아서 익숙하지 않았던 문화환경에 갑자기, 따뜻한 선배님들의 지원을 받고 있자니 조금 마음이 감동해서 그 날 학교를 떠날 수가 없었고 오랜 시간 고마워서 캠퍼스 잔디 밭을 솜털이 처럼 뛰어다니며 감동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서 그 다음의 발표 주제들은 더 명확한 의견과 논리적 관점이 들어간 멋진 글과 발표를 이루어낼 수가 있었던 경험이 되는 토대가 되어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 독후감쓰기에 대한 수업에 대한 추억이 몽글몽글 기억이 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곤 한다.


◆'신촌역 2호선 출구'는 내가 전세냈어유‥


이런 말을 하면 내가 조금, 어린애티가 나서 하기가 싫은데, 나는 어린 시절에 집에서 떨어진 역에 나가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허락을 맡아야할 정도로 집순이로 자라났다. 그런데, 이제 성인이 되어서 너무 낯선 서울에서 공부를 하고 통학을 하려고 시작하니, 집 안에서는 이런 점들을 조금 걱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빠는, 지하철로 학교가는 법을 알려줬다. 아빠가 나를 너무 어린애로 보았기도 했지만, 그당시에는 지하철 어플이 많이 발달하기 전의 세대였고, 그리고 나는 실제로 학교가 멀어서 혼자 가는 그 길이 외롭고 고되었다. 그런데 아빠가 신도림까지 지하철을 같이 타주고 알려줬는데 그 이후로는 혼자서 신촌/광화문/여의도/종각 등의 장소를 훨훨 혼자 날라다니곤 했다.


그리고 신촌역 2호선 출구는 내게 또다른 의미를 준다. 이 장소에서 큰이모랑 엄마는, 이제 어른이 되어서 학교를 다니는 만큼 힘을 내서 잘 다니라고 신촌역 2호선 출구 근처의 '감자탕 식당'에서 감자탕을 사주시곤 했다. 그리고 평소에 약간 표현이 서툰 큰이모도, 이 때 대학교생활 잘하라면서 엄마와 함께 응원을 해준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한편..븐니씨는 이런 염려와는 다르게, 학교를 가면 서로 다른 전공을 가진 동기 친구들을 매일매일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학교에 빠른 걸음으로 출근하여, 곧잘 적응하기도 했다. 또, 특기할만한 점은... 연애세포가 발달한 븐니는 매일 **새로운 남자**를 구경하기 위하여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는 열정을 보이곤 했다.


◆가장 찬란한 빛의 시절은, 가장 큰 후회를 남기게 되는 시절 이기도 하지‥


물론, 위의 과정들처럼 전반적인 모든 흐름이 정말 즐겁고, 유익했고, 나에게 뼈와 살이 되는, 축복의 시간들이라고 여겨지는 날들이었다. 하지만, 뭔가..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좋은 일들만 가득했을거라고..? That's NoNo! 삶이란 공평해서, 가장 좋은 일이 내게 다가올때, 나는 그 행복의 신을 벗을 준비도 해야했다. 무슨 말이냐하면 즉슨, 시험도, 교우관계도, 학교생활도 최고의 정점을 찍었던 날들에 내게는 더 이상, 비교해야할 무언가가 없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즉,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학교 시절에 내가 느끼는 나의 정체감에 대한 만족감이 꽤 큰편이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조금 너무 주변의 말을 안듣고 내 고집대로만 선택하고 전력질주한 것 같은 부분이 많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하여서, 슬슬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말들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 태도가 어느 정도 존재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무렵에, 나는 좀 내 모습에 자신만만했고, 내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내 주관대로만 삶을 대했다는 게 조금 아쉬운 점으로 남고 있다. 그때, 그렇게 자유롭고 아름다웠던 시절에, 조금 더 힘을 빼고 이런 삶을 살아냈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지금도, 가끔씩 드는 부분이 있다. 만약 그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나는 -뭐 그리 넓지도 않았지만- 인간관계를 조금 더 좁고 깊이 있게, 그리고 원래 존재하기 때문에 산소같이 소중함을 잘 못느끼는 존재들에게 조금 더 많은 마음을 써야하지는 않았을까도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그 시간엔 새로운 친구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서,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겐 상대적으로 잘 대해주지 못했던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친구들이 좋다. 음, 그것도 새로운 친구. 새로운 남댜.. 새로운 사랑...♥ 오늘도 개똥이의 글을 감상해주셔서 감사드려욝!


마지막으로, 그때 도움주신 학교 여러분, 아래 치킨 먹고 가십시오. 잉칙힌~♪(※주의사항: 10마리 선착순)


__(o )> __(o )> __(o )> __(o )> __(o )>

__(o )> __(o )> __(o )> __(o )> __(o )>

\____) \____) \____) \____) \____)

|| || || || ||


[븐니기록] 서강대학교, 오겡키데스카, 편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기 걸리지 말고, 잘 지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