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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Mar 01. 2016

최고의 로맨티시스트, 오지랖쟁이

오베라는 남자 - 프레트릭 베크만

스웨덴 작가 프레트릭 베크만이 쓴 장편 소설「오베라는 남자」.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직장까지 잃은 오베라는 남자가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그의 자살시도는 때때로 기막한 운으로, 혹은 앞집으로 이사 온 30대 외국인 부부나 길고양이, 이웃 등의 의도치 않은 방해공작으로 계속 미뤄진다.  오베는 죽기를 포기한다. 그 과정이 참 따뜻한 책이다.  



먼저 책 표지에 박힌 소설 주인공 오베의 얼굴을 보라. 누가 손 끝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욕을 한 바가지는 얻어먹을 것 같은 표정이다. 남의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을 휙휙 내뱉는 까칠한 59세 아저씨.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모습과 행동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평생 사브 차만 몰고 다니는 그의 집착은 다른 말로 신념과 지조였다. 그것은 첫 눈에 반한 여자와 조금 더 이야기하기 위해 정반대 방향의 기차를 매일 타고 다녔던 행동과 일맥상통한다. 일생에 한 여자만을 사랑하다 그녀가 떠나자 매일 꽃을 들고 묘지에 찾아간다. 따라 죽기 위해 여러 번의 자살을 시도하는 그는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다. 그는 그저 웃지 않았을 뿐이다.


오베는 권총으로 자살하려는데  총소리에 고양이가 놀랄까 봐 걱정한다. 기차에  뛰어들기 직전 기관사와 눈이 마주치자 평생 안고 살아갈 그의 트라우마를 걱정해  비켜선다. 입으론 툴툴거려도 이웃의 라디에이터를 수리하고, 얼어 죽게 생긴 길고양이를 집으로 들이고, 애송이 같은 청년의 자전거를 수리한다. 40년 지기 친구이자 웬수 루네를 요양원에 보내지 못하게 막아선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그를 오지랖쟁이라 불러도 좋다. 그는 그저 말보다 행동을 먼저 했을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보이는 행동은 전부이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오베의 감정표현은 극도로 제한돼 있다. 행복하다든지, 슬프다든지, 감동적이라거나 우울하다거나 책에는 오베가 어떤 마음이라는 것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앞집 세 살 꼬마가 오베를 그린 그림을  말없이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두고 아홉 살 여자 아이의 생일 선물 아이패드를 사려고 점원과 싸울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눈물이 흐르고 가슴  한편이 시리다. 구구절절한 심리 묘사보다 행동으로 많은 걸 표현하는 작가는 오베를 닮았다.




"오베나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본문 중)"


「오베라는 남자」는 한 남자의 이야기지만 세대와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 본문처럼 스스로 자기 일 처리하는 게 자부심이었던 윗 세대와 모든 것이 상품화, 전산화되어 있는 지금의 세대. 이를 테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 같은 것. 내 부모의 시대와 내가 사는 지금, 그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결코 섞일 수 없는 무엇이 오베를 더더욱 까칠한 남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맙소사, 사람들은 1889년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이제는 휴대 전화를 재충전하기 위해 휴식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1층짜리 집의 빌어먹을 도면 하나 못 그려냈다. (본문 중)"


며칠 전 지독한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바이러스는 저장 파일을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놨다. 영국 사는 나는 한국에 있는 70 노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나라 컴퓨터 산업 1세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개발자 하지만 끝내 큰 빛은 보지 못했던 아버지는 원격지원으로 내 컴퓨터를 살폈다.


컴퓨터에 관해서는 여전히 나보다 훨씬 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분이다.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했고 위암 수술 후 요즘은 집과 복지센터에서 소일거리를 하며 지낸다. 내가 전화를 하자 "그러길래 진작 <윈도 10>으로 업데이트를 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폭풍 잔소리를 했지만 어쩐지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아버지는 몇 가지 시도를 하다 하드를 빼서 한국으로 보내라 했다.  


복구는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보낼 것이다. 오베네 집 앞으로 이사 온 30대 여자 '파르바네'가 되기로 했으니까. 우리 엄마랑 아직 살고 있는 오베를 위해서다. 디지털 혁명의 최전선을 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세대가 되어 버린 우리 집 오베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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