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코틀랜드식 순대 해기스

그들의 자부심을 엿보다

by 영글음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고대 로마제국 때 로마에게 점령당하지 않았고, 정복왕 윌리엄에게 정복당하지 않았다는 자부심 같은 게 있다. 영국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지만 자기들은 잉글랜드와는 다르다는 정체성이 확실하다. 비록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는 부결되었지만 그것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이므로 “자부심 강하다면서 왜 독립하지 않느냐”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들의 자부심은 자기네 문화를 즐기고 이어 나가려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일부 학교에서 스코틀랜드 고유 언어인 게일어를 가르치고, 결혼식이나 졸업식 등 특별한 때에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는다. 스코틀랜드 댄스인 케일리(Cèilidh)를 출 기회는 또 얼마나 많은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생일 파티 같은 행사에서 케일리를 추며 즐긴다.


해기스를 먹는 것도 그중 하나다. 14세기 즈음 사냥 후 동물의 내장이 상하기 전에 빨리 조리하여 먹기 위해 만들어진 게 해기스라고도 하고, 원래는 잉글랜드의 음식이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건 21세기 오늘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해기스를 자신들의 전통 음식이라 여기며 즐긴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열렸던 '퀴즈 나이트'처럼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해기스영글음.jpg
번스나이트2.jpg
해기스 - 순대 닮았죠?



스코틀랜드에 살면서 해기스를 여러 번 먹었다. 식당에서 고급스럽게 와인 소스를 끼얹은 걸 먹기도 했고 마트에서 소시지처럼 파는 걸 사서 집에서 먹은 적도 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해기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짭조름하면서도 향신 채소가 들어가 매콤하기도 하고 오트밀 같은 곡류 덕분에 고소한 맛도 있는 해기스 맛에 반한 것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스코틀랜드에서 순대 사촌쯤 되는 음식을 통해 이 나라에 한 발짝 다가선 기분이다.


만약 이곳을 여행하다가 해기스를 먹어봤다면 그 경험을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나누길 권한다. 외국인이 우리에게 김치를 먹어봤다며 "마시써"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면 기쁘지 않겠는가. 맛이 있었다면 있는 데로, 없었다면 없는 데로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그래서 소중하다. 특히 그것이 그들의 자부심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keyword
이전 04화비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