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태는 3차 세계대전이 아닐까
드디어 영국도 다음 주부터 학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이미 이번 주 월요일부터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집도 있었다. 방학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정확한 기약은 없으나 대략 올여름까지라 예상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8월 말에 개학을 한다고 하면 지금부터 약 5개월가량 아이들과 집에 있어야 한다. 남편도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온 가족 옹기종기 사이좋게 지낼 계획을 짜야한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자 인터넷 속도가 아주 느려졌다. 원래도 한국에 비하면 느린 편인데 더 심해져 성질 급한 나는 인내심 기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 탓에 한동안 넷플릭스 고화질 서비스를 나라 차원에서 금지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면 더 느려질 듯하다.
한국에서 초·중·고 1학년 아이들이 입학을 못한 것처럼 여기는 프라이머리 스쿨 7학년, 세컨더리 스쿨 5, 6학년 아이들이 졸업도 못하고 학교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 긴 방학 전 마지막 날 하교 시간, 몇몇 학부모는 선생님에게 줄 꽃다발과 선물을 가져오기도 했다. 원래는 학년이 끝난 마지막 날 드리는 거다.
세컨더리 때 치르는 대입시험이 취소되었다. 우리로 치면 수능이 취소된 것이다. 사상 최초라 한다. 대신 수행평가 같은 것을 해서 교사들이 채점하는 방식으로 갈 것 같다. 과연 교사들이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학부모가 많다. 이곳 아이들은 대학에 안 가더라도 취업할 때 이 시험 점수가 필요하다. 대학에, 사회에 나가기도 전부터 실타래가 꼬인 아이들이 안쓰럽다.
며칠 전만 해도 증상이 있으면 바로 NHS(영국 의료시스템)에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확진자와 직접적인 접촉이 있었거나 아주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전화를 해도(전화연결도 한 시간 가량 걸린다고) 자가격리를 하라는 말만 듣는단다. NHS 공식 공고문에 따르면 코로나 19는 현재 특별한 치료제도 없기 때문에 집에서 해열제나 진통제 먹으며 견디라는 게 전부다. 그리고 개인위생수칙이 잔뜩이다. 각개전투가 시작되었다.
페이스북에 마을 커뮤니티 페이지가 있었다. 최근, 그것 말고 <헬핑 핸즈-Helping Hands>라는 페이지가 새로 생긴 뒤 도우미를 모집했다. 혹시나 증상이 있어 집 밖으로 못 나오는 마을 사람이 생겼을 때 도우미들이 식료품이나 의약품 등을 전달해주는 서비스를 위함이다.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페이지 담당자는 거리별로 도우미들의 명단을 업데이트했다. 나도 도우미로 올릴까 잠시 망설였지만 루푸스라는 지병 때문에 하지 않았다. 대신 페이지 좋아요를 눌렀다.
작고 오래된 시골마을의 커뮤니티가 참 강하구나 생각한다. 평생 이 마을에서만 산 사람들도 많다. 씨족 사회처럼 거미줄처럼 연결된 가족들, 사돈의 팔촌이 모여서 사는 마을. 나라가 뭘 안 해줘도 자발적으로 이런 모임들이 생긴다는 건 손뼉 칠 일이다.
<헬핑 핸즈>가 활동을 시작했다. 문제가 생겼다. 실제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 중 일부가 음식보다 담배를 사달라고 떼를 썼단다. 어떤 이는 돈이 없다며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회의를 통해 기준을 세우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 그래도 정부에서 셧다운 방침이 내려오기 전까지 저소득 아이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겠다는 레스토랑도 있고, 여기저기 도움을 주겠다며 손을 내미는 개인도 많다.
어제 에든버러에 시내에 있는 중국 마트에 들렀다. 평소 15파운드 정도 하던 쌀을 사 먹었는데 29파운드짜리 밖에 없었다. 그나마 있는 게 다행이다. 코스트코에도 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 감염될까 걱정되었다.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태반이다. 서두른다고 서둘렀건만 계산하는데 30분 이상 걸렸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고기를 종류별로 샀더니 냉동실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국 전체 인구의 8%밖에 차지하지 않는, 인구밀도 낮은 스코틀랜드 이야기이고 잉글랜드 특히 런던 쪽은 사태가 더 심각한 모양이다.
이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코로나 바이러스는 온도가 올라가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렇다면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도 크다. 흡사 3차 세계대전 같다. 1, 2차 때보다 참전국도 많고 후폭풍은 더더욱 클 것 같다. 무서운 것은 우리 병사들은 픽픽 쓰러지고 죽어가는데 적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연 어느 나라가 승전국이 될 것인가. 전후 복구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일단은 잘 버티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