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글음 May 08. 2020

실패할까 봐 두려워
시작도 못할 뻔

핸드메이드 오픈마켓 Etsy 입점 도전기


이제 "Publish" 버튼만 누르면 되었다. 그러기만 하면 사람들은 내가 만든 수공예품을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원하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드디어 나도 돈을 버는 것이다! 숨을 고른 뒤 마우스 화살표 모양을 버튼 위에 포개어 놓았다. 누를까 말까, 누를까 말까.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뛰다 못해 뜨거운 물에 닿은 울처럼 확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에잇, 결국 노트북 모니터를 덮어버렸다. 2019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날의 내 모습이다. 고장 난 비디오처럼 같은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미국에서 시작한 핸드메이드 오픈마켓 엣시(Etsy)에 수공예품을 팔아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막상 결심했을 당시에는 무척 들떴던 기억이 난다. 종이 접기와 한국 전통 매듭, 한글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액자에 넣어 팔겠다는 게 나의 첫 사업 아이디어였다. 근사해 보였다. BTS를 비롯하여 K-pop이 세계적으로 유행이니 잘만 하면 팔리지 않을까? 드디어 가슴 뛰는 일을 찾은 것만 같아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2개월 간 벤치마킹도 하고 사업 개시용 제품 10개를 만들었다. 사진을 찍고 가격을 정했다.  


그런데, 그랬는데! 막상 "Publish" 버튼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0.1초 만에 누를 수 있는 이 버튼이 뭐라고, 그걸 누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안의 목소리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수정할 건 없나? 아무도 안 사면 어쩌지? 재료비만 날리게 되면 어떡해. 영어로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나쁜 리뷰가 들어오면? 검은 목소리는 점점 확대되었다. 만약 잘 되지 않는다면 휴우... 쪽 팔리겠지. 내가 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비웃을 것만 같았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네가 그렇지 뭘. 낄낄낄.


물론 그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언제나 나의 도전을 격려했고 친구들은 응원을 해 주었다. 이런 상상이 얼마나 바보 같은 건지 알면서도 이성과 감정은 따로 놀았고 사업 개시의 날짜는 하루하루 멀어져 갔다.


서른 초반 즈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남편을 따라 한국을 떠났다. 그러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아이는 만으로 두 살이었다. 5년의 기간 동안 남편은 공부를 마쳤고 나는 딸을 하나 더 낳았다. 우리 가족은 한국 대신 영국으로 왔고 그것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나의 경력이 단절된 지 10년이 되었다는 뜻이고, 엣시 사업은 나에게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대신 "크래프터"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아줄 절호의 기회였다는 것이다. 마흔을 넘어서 하는 도전, 정말이지 잘 해내고 싶었다. 그 마음이 커질수록 실패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함께 커 갔다.  


내 의지를 잡아 세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사업을 '시작'이라도 하기 위해 내가 간 곳은 다름 아닌 유튜브였다. 그곳에서 "실패가 두려워"라는 키워드를 쳐 넣었다. 상위에 뜨는 네댓 개의 동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성공하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기 위해 시작하겠다고. 동영상의 여러 사람들이 그랬다. 실패는 필수 조건이라고. 그것에서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는데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리스크를 껴안으라고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를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설이다. 그는 이리저리 재고 걱정하느라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제발! 제발! 그러지 말라고 강렬한 손짓과 함께 절규하듯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  


Just, do!!


베네딕트의 말은 나의 심장을 강타했고 바로 그날 내 엣시 샵은 고개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문을 연지 1년 하고도 4개월.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2개월 간 방문자수가 제로였다가 첫 번째 주문을 받은 날의 기쁨,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결혼식 액자, 카드, 마크라메 등을 팔기 시작한 일, 고객들과 나누었던 대화들. 한편으로는, 제품 배송에 문제가 생겨 배송비를 전액 환불해 준 적도 있고 결혼식 날짜를 잘못 써서 다시 만들어 준 일도 있다.    





아직 원하는 만큼 수입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작년에 비하면 매출은 올라가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성공한 걸까, 실패한 걸까. "성공했다", "실패했다"는 것은 과거형이다. 지금은 길 한가운데 있으므로 아직 어떤 말도 갖다 붙일 수 없다. 더 잘해보고 싶어서 한 발 한 발 나아갈 뿐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나는 여전히 망설인다.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픈마켓 입점을 통해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음을 경험했다. 만약 지금 도전 앞에 망설이고 있는 이가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딱 한 발만 나가보자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면 그건 그저 과정일 뿐이라고. 두려워서 첫 발을 떼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Just do! Just do it!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후 친목도 비대면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