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펜데믹 이후 사회, 경제적인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세상 다수의 인류가 한꺼번에 집에 머물면서 활동을 멈추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변화는 하나씩 실행하고 경험하면서 오류를 발견, 수정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코로나는 그럴 새도 없이 우리 앞에 거대한 운석 하나를 냅다 팽개쳐 놓았다. 앞으로 바뀌게 될 세상을 따라가려면 한동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것이다.
우리 집에 사는 경제학자 역시 재택근무의 증가를 비롯해 국경 강화, 제조업과 농업의 중요성 대두 등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를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자주 했다. 비대면 활동과 무인 서비스의 증가, 온라인 유통사업과 재택근무의 활성화 등 이미 시작한 변화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다. 두 눈이 얼굴보다 커질 정도의 획기적인 변화가 등 뒤에서 우리를 놀랠 준비를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둘째 딸의 온라인 플레이 데이트
영국 록다운 3주 차에 접어들면서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친목도 온라인으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지지난주 일요일 둘째 딸 친구 엘시네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페이스북 비디오 콜로 아이들을 통화하게 해 주자는 것이었다.
집에만 있느라 심심한 8살 딸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얼씨구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장장 한 시간 동안 내 휴대폰으로 친구 얼굴을 보며 별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어댔다. 서로의 집안을 구석구석 보여주고 강아지도 인사시키고 얼굴을 재미있게 바꾸는 앱을 공유하며 말 그대로 놀았다. 두 엄마가 통제하지 않았다면 두세 시간도 더 했을 것 같다.
그날 이후 엘시네 엄마와 나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화상통화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온라인 플레이 데이트를 기획한 셈이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그녀들은 두 번째 만남을 무사히 마치며 다음 주에 만날 것을 약속했다. 다른 친구 제시카와도 한 번 해봤는데 온라인 케미가 맞지 않았던지 5분 만에 끊었다. 둘째가 이러고 있는 동안 중학생 첫째 친구와 4시간 동안 화상통화를 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는데.
남편 직장 동료들의 원격 티타임
남편은 직장에서 일주일에 몇 차례씩 화상 미팅을 한다. 그러면서 미팅의 풍경이 바뀌어 간다고 했다. 전에는 정장 차림은 기본, 배경에 신경 쓰느라 책을 늘어놓거나 옷가지 같은 것들이 안 나오게 신경을 썼는데 지금은 다 편한 옷차림으로 한다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침대에서 하거나 부엌에서 하는 바람에 그들의 가족들이 오가는 모습을 다 지켜보기도 한단다. 손 흔들며 인사도 하면서.
몇 년 전 BBC 방송에서 로버트 캘리 교수가 인터뷰를 하다가 딸이 둠짓둠짓 춤을 추고 나와 유명해졌잖아? 근데 이제 그게 모두의 일상이야
남편의 말이다. 실제 그가 회의를 하거나 온라인 강의를 촬영할 때 우리 집 개는 유독 멍멍거렸고 옆방에서 딸은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플루트를 불기 시작했다.
멍멍거렸던 바로 그 강아지 코리리 - "내가 뭐!! 왜!! 멍멍"
더 재미있는 것은 직원들 중 몇몇이 원격 티타임을 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각자 집에서 온라인으로 얼굴을 보며 같은 시간에 차를 마시자는 것이다. 반려동물 사진을 공유하며 원격 모임을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고 한다. 집에 가두어 놔도 어떻게든 친목을 다지고 만나려고 하는 모습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아쉽게도 남편은 참가하지 않아 실제 모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뉴 노멀 시대가 온다
뉴 노멀 시대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뉴 노멀"이란 용어는 2008년 이후 세계 금융위기와 경제 침체 기간 동안 만들어진 새로운 경제적 기준을 일컫는 말로 저성장, 저소득 등을 특징으로 한다. 한 편으로는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현상들이 점차 표준으로 되어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원격 수업과 미팅, 비대면 활동의 활성화 등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둘째 딸의 온라인 플레이 데이트, 남편 직장에서의 원격 티타임 같은 경험들이 횟수가 늘어나고 재미가 쌓이다 보면 친목도 온라인으로 하는 게 직접 만나는 것보다 늘어날 수도 있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의 경우에는 이렇게 어릴 때부터 몸으로 익힌 것들이 세상 변화의 속도와 잘 맞아떨어져 적응을 쉽게 할 것이다.
문제는 올드 노멀에 익숙한 기성세대인데,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는 뉴 노멀 시대를 잘 맞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정서적으로 어쩐지 잘 맞진 않는다. 사람은 직접 만나야 하고, 책은 두 손으로 잡고 읽어야 맛이고, 화상채팅은 번거롭다. 물건도 직접 가게 주인과 마주하며 사고 싶다. 모르긴 몰라도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예고되어 있다. 코로나 사태가 하루 빨리 끝나 뉴 노멀이든 올드 노멀의 귀환이든 실컷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