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면 참 좋겠구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문구를 맨 처음 보았을 때 내 머리 위로 전구 불 하나가 번쩍 켜졌다.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유레카! 바로 이거다! 할 일은 많은데 늘 모자란 시간 속에서 이것이야 말로 내가 새겨야 할 지침이라 생각했다. 한 번 알고 나니 이 책, 저책, 인터넷 여기저기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자주 보였다. 이것은 인생 성공을 위한 가르침이자 직장, 삶 어디에나 적용되는 원리였다. 이 멋진 말을 그제야 알다니!
실천으로 들어갔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을 늘어놓고 무엇을 선택할지 심사숙고했다. 한 가지를 선택했다. 이젠 집중할 차례. 그... 근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것에 집중하려고 아무리 노력해 봐도 자꾸만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저걸 했어야 했나. 머리를 흔들고 다시 집중! 이내 산만, 집중, 딴생각, 후회, 집중, 휴식. 아무래도 선택을 잘 못한 것 같았다. 과감히 다른 걸 골랐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직접 결정했는데도 단 한 가지에만 몰두하려고 하면 할수록 머릿속엔 제2의, 제3의 선택지들이 "유후~ 날 데려가~"하고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어떤 것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의지가 좀 약하지... 자포자기의 심정이다가도 늘 선택을 해서 집중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지 않고서는 정신없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뭐 하나라도 부지런히 갈고닦아 내 경쟁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쉬워 보이는 다섯 글자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구나. 나처럼 관심사가 다양하고 하고 싶은 게 널려 있으면서도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매번 갈팡질팡 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것이로구나 하는 사실을 말이다.
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시험공부를 하려고 해도 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수학을 해야 할 것 같고, 영어책을 펴면 어느 순간 과학을 공부하고 싶은 아이였다. 머릿속으로는 한 과목을 다 끝내고 다른 걸 하는 게 효과가 좋을 거라고 판단하면서도 행동은 따로 놀아 언제나 모든 과목을 조금씩 들춰보다 덮고는 했다. 이런 삶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훌륭한 관용어가 있으니 바로 "죽도 밥도 아니다"다. 결과적으로 어느 과목 하나 잘하는 것 없이 다 고만고만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어도 나는 한 권씩 읽지를 못한다. 대개 서너 권의 책을 같이 읽어 나간다. 그렇다고 전부를 동시에 펼치고 읽는 건 아니고 시간에 따라 혹은 장소에 따라 읽는 책이 다르다는 뜻이다. 재미있어서 한 권 후딱 다 읽으면 그것과 함께 읽고 있었던 책을 펼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책을 열기 때문에 항상 읽고 있는 도서의 숫자는 유지되었다. 이런 내가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하니 잘 안된다.
얼마 전 배우 하정우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다시 찾아보고 싶었으나 실패하여 기억력에 의존하자면, 그는 배우도 하고 감독도 하며 작가, 화가까지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모두 한다고 했다. 그의 팬도 아니고 그가 나온 혹은 만든 영화를 본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정우는 내 부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라면 나를 이해해줄 것 같았다. 물론 이 배우는 하고 싶은 걸 다 잘(!) 하고 있으니 나와는 다르지만.
나는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따라 나 자신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포기했다. 선택하느라 낭비하는 시간, 집중하다가 후회하는 시간 대신에 하고 싶은 일을 모두 일렬로 세워서 조금씩 모두 하기 시작했다. 우선순위는 정한다. 그것에 따라 시간을 분배한다. A는 50%, B는 30%, C는 20%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게 훨씬 나에게는 맞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선택과 집중보다 효율은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멋진 지침이라도 실천이 잘 안 되는 걸 어찌 하오리.
단점이라면 종종(어쩌면 자주?)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면 물론 좋지만 엄마로서, 아내로서, 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 또한 차고 넘치는 게 현실이다 보니 그것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내가 결정한 방식에서는 중요하다. 이봐 이봐! 영주권 때문에 Life in the UK라는 시험을 치러야 할 날이 2주도 안 남았는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잖아! 어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