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지 좀 됐다. 한 3년 전쯤? 엄마 무릎에 앉아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빼앗겨 불쌍하다며 눈썹을 모으고, 묘지 옆에서 개굴개굴대는 청개구리 때문에 목놓아 울던 딸이 사라졌다. 그 대신 낯선 중딩이 있다. 그녀는 방년 15세. 키는 나보다 5cm 더 크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만 붙어 있다. 얼굴 보기도 힘들고 목소리 듣기는 더 힘들다. 그나마 하는 말 중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이것이다.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낮은 음성으로.
"오늘 저녁때 뭐 먹어요?"
켁, 뭘 먹든 말든 식탁에 와서 보면 될 거 아니야! 그걸 왜 묻고 또 묻는지 맘에 안 든다. 다음으로 자주 하는 말은 또 이것이다.
"싫어요.", "안 해요.", "몰라요."
맨날 싫고, 맨날 모른데. 도대체 너희 엄마가 누구니. 뉘 집 자식이길래 이렇게 생소한 거냐고. 3년 전부터 내가 자주 하는 말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었다. 내 속으로 낳았건만 사춘기 딸이 이해가 안 된다. 외향성 강한 내가 내향성 강한 자식을 키우려니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았다. 어릴 땐 이러지 않았는데. 아쉬움과 어이없음이 한데 어우러져 실타래처럼 똘똘 뭉쳤다.
하지만 나는 엄마! 한번 우리 집 개딸을 이해해 보기로 한다. 가능할까? 그건 나중에 가서 따지기로 하고 일단 시도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느낌적인 느낌인데, 지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몇 년 후에 "아, 그때 그렇게 해볼 걸"하고 후회할 것 같아서다. 혹시라도 이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누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작정하고 논문 쓰듯 이 아이를 꼼꼼히 파헤쳐볼 작정이다. 더 자라 내 곁을 떠나기 전에.
일단 우리 집 개딸의 행태를 나열해 본다.
1. 해야 할 일을 맨날 까먹는다.
2. 더럽다. (잘 안 씻어서)
3.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4. 노동자처럼 유튜브를 본다. (하루 8시간)
5. 노동자처럼 게임을 한다. (야근도 한다.)
6. 노동자처럼 영화도 본다. (누가 보면 영화 관계자인 줄)
7.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 켜고 모니터를 보면서 휴대폰으로 친구와 대화한다. (이런 멀티가 가능한가?)
8. 밥보다 달달 구리를 더 좋아한다.
9. 특이한 음악을 듣는다. (이게 무언지 한 번 파헤쳐볼 작정)
10. 공부는? 흠, 그건 자기 인생이니. 알아서 하겠지.
이 중에서 내가 걱정이 되는 부분은 단연코 4, 5, 6번이다. 청소년을 둔 집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할 텐데 도무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거 너무 많이 하면 머리 나빠져"라고 말했을 때 딸은 왜요? 어떻게요? 그럼 뭐해요?라고 물었다. 그때 대답을 잘했어야 했는데! 사실 어떤 부분이 어떻게 문제인지 몰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알아볼게, 기다려봐 라고 했던 게 벌써 2년 전이다. 나름 전문가의 언어를 빌려 설득하려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마음먹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 몇 달 전 엄마네 들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에게 내 어린 시절에 관해 물었다. 내 딴에는 스스로 기억하는 나의 옛 모습이 정확하다는 확신을 받아두기 위함이었다.
"엄마, 나 중고등학생 때 어땠어? 배려심 강하고 그랬지? 우리 딸은 좀 이기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 지 밖에 몰라. 누굴 닮았는지 원."
그랬는데 칠순을 앞둔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이 내뱉었다.
"얘 좀 봐. 무슨 소리야. 너도 너밖에 몰랐어."
"내가 그랬다고?! 에이~~~~ 설마. 아닌데, 나 다른 사람 엄청 챙겼는데. 지금도 그렇고."
"몰라. 밖에 나가서는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가족들한테는 안 그랬어."
그날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중 하나는 내 기억력은 영 믿을 게 못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찌 이리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일까!) 또 하나는 사춘기 적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지금 우리 딸도 좀 더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한다는 점이다.
이미 나는 4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관점이 생기고 인생관이 잡혔다. 그 기준으로 열 다섯 아이를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엄마였다면 경험을 자양분 삼아 한땐 나도 그랬지 하면서 어린 딸을 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나, 나도 사춘기 엄마는 처음인데. 이미 개구리가 되어 버려 올챙이 때부터 원래 다리가 4개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파헤치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 남았다. 몇 주 동안 사춘기에 관한 책을 좀 뒤져서 읽어 보았는데 결과가 영 시원치 않았다. 사춘기에 나타나는 모습들이 워낙 천차만별인 데다가 양육관이 다르니 받아들이기도 쉽지가 않았다. 어떤 책에서는 아이의 사생활은 존중하되 아이방은 부모가 맘껏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방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사생활을 어찌 존중하란 건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상황별 솔루션을 제시하는 책 말고, 사춘기 시기의 뇌와 정서가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찾아보고 공부할 예정이다.
핵심은 딸과의 인터뷰가 될 것이다. 모르면 직접 물어보면 될 일! 소싯적에 사보기자, 잡지기자하면서 갈고닦았던 인터뷰어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여 그녀를 취재할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친구다~ 생각하고.
첫 주제부터 <청소년 인터넷 중독, 이대로 좋은가!>로 잡으면 조사할 게 너무 많을 것 같아 일단 이것으로 하려고 한다. <내 딸은 왜 잘 안 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