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 사춘기가 있는가 하면 안 씻는 사춘기가 있다고 한다. 우리 집 중딩은 후자다. 먼저 남의 집 자식부터 이야기를 해볼까? 지인의 아들은 씻는 사춘기를 지났다. 하루에 두 번, 한 시간씩 샤워를 하며 외모에 신경을 엄청 썼다고 했다. 우리 딸보다 3년 빠른 아이였기에 나는 딸이 중학생이 되면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그것 때문에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해맑은 상상도 했다. 흠, 그래. 씻는 사춘기여서 요금 걱정을 하는 게 더 나았을 게야.
딸이 안 씻는 사춘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일 같이 잔소리를 해대고 있어서 씻기는 한다. 다만, 왜 스스로 하지 않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가끔은 말하는 걸 까먹기도 쩝...)
외모에도 크게 관심이 없다. 이 지점부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얼굴에 뭐라도 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앞머리가 생각대로 안 말리면 학교도 가기 싫었는데. 우리 엄빠가 물려준 두껍고 뻐센 머리칼이 싫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그녀는? 머리 스타일은 딱 두 개다. 집에선 풀어헤치고 밖에서는 하나로 묶고. 뒤통수가 볼록하여 말아 올려 똥머리를 하면 엄청 예쁠 텐데 스스로 머리를 만진 후로는 단 한 번도 깡똥 묶은 머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하다못해 외출할 때 삔 하나만 꽂아도 분위기 여신 될 텐데 말이다.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딸. 잘 안 씻는 딸, 심층취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핵심 키워드 몇 개를 찾아내었다. 먼저 인터뷰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대화를 살려 정리해 본다.
나: 딸아, 전에도 말했듯이 엄마는 너를 취재하려고 해. 괜찮지?"
딸: 네. 괜찮아요.
나: 우리 딸은 왜 그렇게 씻는 걸 싫어해?"
딸: 귀찮으니까요.
여기까지 듣고 아니 밥 먹고 숨 쉬는 건 안 귀찮아? 하는 생각이 든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꼰대 부모다. 밥 먹고 숨 쉬는 것은 생존에 해당하는 것으로 안 하면 죽지만 씻는 것은 흠... (더러워서, 세균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지만) 당장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니 같은 기준에 놓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이 글을 쓸 때의 생각이고 말은 생각보다 튀어나오는 속도가 빨랐다. 그렇다. 나는 꼰대였다.
나: 밥 먹는 건 안 귀찮아? 음식은 왜 맨날 먹어?
딸: 안 씻은 상태보다 배고픈 거 참는 게 더 힘드니까요.
저것이 말이야 방귀야. 어쨌든 첫 번째 중요 키워드는 "귀찮음"이다. 청소년의 귀찮음을 연구해야 한다.
딸: 머리 감고 샤워하면 다른 일을 못하잖아요. 그것도 싫어요.
나: 샤워하는 자체가 뭘 하는 거잖아.
딸: 그러니까요. 심심해요. 다 감고 머리 말릴 때도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 수 없잖아요.
나: 생각을 하면 되잖아. 샤워하면서 생각하기.
딸: 생각은 평소에도 너무 많이 해요.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요.
나: 만약 미래에 샤워하면서 게임하는 방법이 연구되면 스스로 자주 씻을 것 같아?
딸: (몇 초 생각하더니 말꼬리를 흐리며) 흠....... 뭐....... 네......?
딸은 세수를 하거나 이를 닦고 샤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린다고도 했다. 하기야, 게임하고 유튜브 보다 보면 거기에 폭 빠져들텐데 뭔들 안 잊을 수 있을까. 두 번째, 세 번째 키워드는 "심심함"과 "잊어버림"이다. 어쩌면 뉴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중독 수준이라는 것도 연결되어 있을지 모를 일이라 짐작했다.
결론을 도출하자면 우리 딸이 자주 안 씻는 이유는, 샤워를 하러 가기가 귀찮고, 심심한 일이라 안 당기고,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기 때문이다.
이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문가 한 분을 모셔보자. 어렵게 외국에서 섭외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 겸 학과장인 프랜시스 젠슨 박사님이다. 뇌과학 전문가이자 10대 두 아들을 키워본 엄마이기도 하다. 직접 찾아뵈려 했는데 코로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책으로 뵈었다. <10대의 뇌, 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서!
일단 이것부터 알아두어야 하는데 박사님에 따르면 10대의 뇌는 성인과 다르다고 한다. 80% 정도밖에 발달이 안 된 상태다. 이 나머지 20% 간극 때문에 사춘기 아이들은 (숨 참을 준비하시라)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화를 잘 내고 충동적이고 쉽게 감정이 폭발하고 잘 집중하지 못하고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헉헉...... 아직 안 끝났다) 어른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약물이나 알코올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위험한 행동에 참여하는 등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인간의 뇌는 뒤에서 앞으로 발달을 한단다. 고로 10대 청소년들은 아직 이마엽(전두엽) 부분의 발달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이 부분이 바로 교양있고 성숙한 어른으로 만드는 곳이다. 판단과 통찰, 충동조절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 바꿔 말해 사춘기 아이들은 판단의 근거가 약하고 충동적이라는 뜻이다.
책 <10대의 뇌>를 참조하여 직접 만들어 본 뇌의 구조와 발달 방향
특히, 박사가 말한 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 보자.
이마엽의 집행 기능 중에 미래계획기억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미래에 특정 행동을 수행하겠다는 의도를 마음 속에 유지하는 능력을 말한다. (중략)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 10대의 나머지 성장 및 발달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그렇구나! 우리 딸이 머리감기를 게을리 하고 해야 할 일을 자주 잊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미래계획기억이 약해서! 이마엽이 덜 발달했기 때문에! 씻어야 한다는 행동을 수행하겠다는 의도가 마음 속에 계속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머리 감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도 스리슬쩍 넘어가는 것 역시 자신의 더러움이 본인의 신체에, 남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 이해는 했다. 그러면 어쩔 건데. 사춘기는 뇌가 문제구나 하고 넘어갈 것인가? 젠슨 박사는 10대 자녀들에게 반복해서 상기시켜야 한다고 했다. 결국 잔소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떡해. 애들 뇌가 그렇다는데.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피곤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이것은 매일 머리감기처럼 해야 하는 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질풍노도 시기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사건에 대해서도 반복해서 경고를 하고 주의를 줘야 한다는 뜻이다.
"10대 자녀의 뇌가 완전히 배선과 연결을 마치고 스스로 작동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 당신이 10대 자녀의 이마엽이 되어주어야 한다."
프랜시스 젠슨 박사님의 말이다. 그러니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여, 아이들의 이마엽이 되자. 이왕 할 잔소리 입 아프다 생각말고 사랑과 애정을 듬뿍 담아 해보는 건 어떨까.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표현을 발굴하며.
"왜 여러 말 하게 만들어?"
"하라고 분명히 말했는데 안 했네?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한다며? 한다며!!!!!"
대신에
"오늘 너의 머리는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것이 참기름 바른 바람떡 같구나."
"우리 딸, 샤워 한 번 할까? 이것이 백만스물두 번째 부탁이야."
허허허. 이건 우스개 소리로 그냥 해 본 말이다.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면 지친다는 것 잘 안다. 이래 저래 사춘기 엄마하기도 고되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부디 우리 힘내자! 그들이 20대가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들의 이마엽이 지금 빛의 속도로 발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