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중딩은 노동요를 듣는다

이런 노래를 좋아할 줄이야

by 영글음

갑자기 음악이 들렸다. 햇살이 쨍쨍했던 날, 가족끼리 공원 산책을 하던 중 중학생 딸이 내 귀 한쪽에 이어폰을 넣어줬기 때문이다. 딸은 아무 예고 없이 자기가 듣던 음악을 그렇게 공유했다.


"엄마도 들어 보라고."


감성파 엄마는 딸의 작은 행동에 감동했다. 방에만 붙어 있는 무뚝뚝한 내 딸이 이런 수도 있구나. 정신을 가다듬고 음악을 들었다. 몇 명의 남자들이 아카펠라를 부르고 있었다. 듣고 있다 보니 불현듯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어릴 적 TV 광고에서 보았던, 지금도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노래.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O 고래밥, 헤이!"


"딸램, 이 노래 뭐야? 해적들 노래 같아."

"맞아요. 그런 노래예요."



뭐시여? 아니 왜 해적들의 노래를 듣는단 말인가? 해적은 바다의 강도들이 아닌가. 이왕이면 건전한 노래를 들으면 좋으련만. 노래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뭐라고 하는지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해적이라는 두 글자에 내 눈은 물음표를 달고 하늘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는 산책하는 중. 나무가 우거져 햇볕과 그림자가 반복되는 구불구불한 길을 노래와 함께 걸었다.


딸이 핸드폰에 담아온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종류의 노래였다. 근데 이게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아카펠라인데도 박자감이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게 헤이, 헤이 하는 후렴구를 넣고 있었다. 산책이 끝날 무렵,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들 너무 좋다. 재밌어!"


집에 돌아간 후 딸은 이 음악의 장르가 <Sea Shanty>라고 알려주었다. 그녀의 입에서 이 단어를 처음 들었다. 발라드, 트로트, 댄스, 팝, 재즈 이런 건 알아도 <씨 샨티>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검색을 해 보니 이건 해적들의 노래라기보다는 <어부들이 부르는 노동요>였다. 그래서 그랬구나. 리듬이 간단하여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고 일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졌던 것이! 어쩐지, 나도 이 새로운 장르의 팬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영화 겨울왕국에서 맨 처음 나왔던 노래도 비슷한 분위기다. 일렬로 서서 얼음을 깨는 남자들이 부르는 노래. 영화의 시작을 열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예고하게 만들어준 그 노래도 같은 장르일까? (찾아보고 좀 더 붙여보자)




씨 샨티를 불러 인생 대박 난 청년 이야기


딸 덕분에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알아가던 무렵, 씨 샨티를 불러 인생이 완전히 바뀐 남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94년 생인 그의 이름은 나단 에반스다. 흠, 보자, 94년 생이면 지금 몇 살인고? 엥? 만으로 27살? 하여튼 이 남자는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근처에 살던 우체부였는데, 틱톡에 19세기에 유행했던 씨 샨티를 불러서 올린 덕분에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노래 제목은 <Wellerman>다.


2020년 12월에 그가 올린 <Wellerman> 이 영상이 속된 말로 떡상한 덕에 우체부 그만두고 정식 가수를 데뷔했다고. 현재 틱톡 조회수가 200만이 넘었고 2021년 정식으로 1집을 발매한 후 영국 빌보드 차트 1위의 기염을 토했으니 흑, 일단 부럽다. 역시, 디지털 시대엔 뭐든 발자국을 남겨야 해! 틱톡 팔로워가 904.4K, 유뷰브 구독자 수는 410k다.


이 장르를 (어쩌면) 오늘 처음 들었을 분들을 위해 유튜브 영상을 소개한다. 오리O 고래밥을 떠올리며 감상해 보자. 가운데 있는 청년이 나단 에반스고 나머지 분들은 틱톡 영상을 보고 함께 노래나 음악으로 능력을 더한 분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따로 안 찾아봐서 모르겠다. 다들 유명하신 분들 같던데. 쏴리)


https://www.youtube.com/watch?v=UgsurPg9Ckw


처음에 나단 에반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며 알아보니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노래를 부르게 된 사람만은 아니었다. 8살 때부터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영상이 대박 나기 전부터 소셜 미디어에 팝이나 민요 등을 올렸다고 하니 이 부분에서 이 문구가 딱 떠오른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내가 씨 샨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차 타고 어디를 갈 때마다 딸은 휴대폰에 음악을 잔뜩 담아 왔다. 한동안 노동요만 듣던 그녀는 요즘 나름대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인다. 대부분 뮤지컬 노래, 컨추리 송 등인데 완전 내 취향 저격이다. 신기하게 딸이 좋아하는 노래는 다 좋다. 오랫동안 딸과 나의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애, 그래서 이해가 잘 안 되는 애로만 여겼는데 음악으로 우린 연결 고리가 하나 생겼다.


"BTS 같은 노래는 안 좋아? 중학생들한테도 인기 되게 많은데."

"네, 안 좋아요."

"한번 들어 봐. 걔네들 노래가 얼마나 많은데."

"들어 봤어요. 딱히..."


그렇지, 인정해야지. 음악은 어디까지나 개취니까.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어차피 완벽하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입고 먹는지, 요즘 신경 쓰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알아가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꼰대 같은 엄마라 이왕이면 모든 걸 골고루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지만 말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우리도 씨 샨티를 불러서 틱톡과 인스타에 올리는 거야!"


단칼에 거절할 줄 알았는데 엄마의 즉흥적인 계획에 딸은 동참했다. 고른 노래는 <Dear Calypso>. 그녀와 나는 25초짜리 짧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래의 후렴구부터 연습을 하여 화음을 만들고 영상을 찍었다. 막상 올리고 나니 내 부분에서 음이 틀려서 신경이 거슬리지만 딸과 함께 했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고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인스타그램은 팔워로가 있어서 조회수가 좀 나왔는데 틱톡은 "11".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자기 방에만 처박혀 하루 종일 유튜브 보고, 게임에 빠진 사춘기 중학생과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음번엔 무슨 노래를 같이 불러볼까? 요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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