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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Dec 13. 2021

전직 영양사가  글 쓰게 된 힘 '질투'

내 삶의 강력한 동기에 대하여

남자를 사이에 두고 다른 여자를 질투한 적은 없다. 대신 어떤 이들이 이미 올라가 있는 자리나 그들의 실력, 운, 상황 등을 질투한 적은 많다. 너~무 많다. '몹시 부러운 감정'을 굳이 '질투'라 표현한 것은 그것이 커지고 커졌을 때 내비쳐지는 속내가 다소 유치하고, 일차원적이며, 원초적이면서도, 끈적끈적하며, 옹졸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질투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거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준 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 감정을 미워할 수가 없다. 영양사로 시작했던 나의 직업이 질투를 계기로 해서 글 쓰며 돈 버는 직업으로 바뀐 적도 있었으니. 그러니까 그어떻게 된 일이었냐면...  




카바레 다니던 꼬꼬마 영양사 시절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딘 곳은 여의도 증권회사 13층에 자리한, 벽이 전면 유리로 된 사원 식당이었다. 창문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두 다리를 놀려 땅 위를 걷는 사람들이 모두 개미 같아 보이는 곳이기도 했다. 한식, 중식, 양식, 분식 4가지 코너에 하루 2000식을 담당하는 영양사. 그것이 나의 일이었다.


처음엔 다 좋았다. 경제는 내가 어른이 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호황이었던 적이 없었는데, 졸업 전에 대기업에 취직하여 돈을 벌게 되었으니 안 좋았을 리가! 급여 수준도, 복지도 사회 초년생에게는 괜찮은 편이었다.


비록 회식 때 주방에서 일하시는 여사님들, 조리사 분들과 함께 그 이름도 찬란한 <꽃마차>나 <백악관> 카바레에 가서 여사님들을 부등켜 안고 부르스를 추거나 송대관의 네박자에 맞춰 관광버스 춤을 춰야 했지만 뭐,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사실은 즐겼......)


몇 개월 후 옆 옆 증권 회사 사원식당의 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식당은 13층에서 20층으로 높아졌다. 그곳에서는 여의도 일개미들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카바레에 가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영양사의 업무를 그대로 하되, 점장까지 해야 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월 정산을 할 때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탕비실에서 쪽잠을 자야 했다. 넘치는 노동 시간이야 어느 직장인이나 겪을 법한 일이라 생각하며 꿋꿋이 버텨냈다.      


그러나 육체와 정신을 좀먹는 일들은 도미노 쓰러지듯 계속 늘어났다. 사업계획 대비 목표 매출액을 맞추느라 없던 아침메뉴 - 라면을 끓여 팔다 보니 출근 시간이 앞당겨졌다. 중간관리자의 입장이 되어 직원들 시급을 50원 인상으로 동결하라는 본사의 지침을 받은 채, 100원을 올려달라는 여사님들을 설득하는 일은 진짜 죽을 맛이었다.


만약 지금의 나더러 하라고 했으면 그때보단 유연하게, 잘 배워가면서 했을 것 같은데 스물넷의 나에겐 모든 게 다 넘어야 할 산처럼 보였고 아득하기만 했다.   


어쩌면 가장 싫었던 건 야구모자 같이 생긴 위생모를 쓰고 일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머리통 자체가 이쁘게 생겨먹질 못해서 웬만한 모자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걸 쓰면 그나마 고딩을 유지했던 이미지가 중딩까지 내려가 버렸다. 직장 생활에 동안은 '적'이다. 점장이 중딩이라니.



기자를 하는 옛 친구가 등장하다


일도 싫고 모자도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대기업 사원의 타이틀을 버릴 용기도 없어서 인생의 온도를 미적지근하게 데우던 즈음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생 친구랑 <네이트온- 오 추억의 이름! 그 당시 최신 메신저>으로 대화를 하다가 다른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너 유선이 기사 봤어? 걔 인터뷰했더라?"

"인터뷰? 무슨?"


친구는 유선의 기사가 실린 사이트의 링크를 보내주었다. 유선은 고등학교 때 합창반에서 나와 단짝이 되어 붙어 다니던 친구다. 대학 졸업 후 각자의 삶이 바빠 뭐하고 사는지도 몰랐는데 링크를 타고 들어간 인터넷 일간지 인터뷰 기사가 알려주었다. 그녀는 IT 업계 매체에서 기자가 되어 일하고 있다고. 순간, 심장이 벌렁거렸다. 기사를 다 읽고 났을 때 몇 가지 단어가 머릿속을 어지럽게 떠돌아다녔다.


유선, 기자, 글쓰기, 부러움, 한숨, 자괴감, 기타 등등


너는 기자가 되었구나. 멋지다. 잘 사는 것 같다. 특히 '부러움'에 가장 많이 동요되었다. 부러움을 입 밖으로 꺼내 발음하다 보면 마치 부드럽고 부들부들할 것 같지만 뒷 편에 숨겨진 쪽을 들여다보면 완전 딴 판이었다. 멋있어 보이는 일을 하며 돈 벌고 있는 친구에 대한 시샘과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나 싶은 자괴감, 고된 영양사 업무의 현실이 한데 섞여 고슴도치 같이 까칠까칠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다. 뾰족한 가시가 나를 계속 찔러댔다. 계속, 심장이 벌렁거렸다.


질투였다. 질투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며 미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당시 내가 유선이를 미워했을까? 흠, 미워하진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분명 샘은 났다. 나도 멋진 직업을 갖고 싶었다.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기자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글 쓰며 돈 버는 일 같은 걸 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폼에 죽고 폼에 살았다. 그랬기에 지금보다 철이 더, 더, 들기 전이었던 20대 중반의 나는 실속보다 겉멋이 들어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그 당시가 (직장과는 별도로, 무보수로) 활동하던 사회단체에서 편집부로 옮겨 기관지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였다. 조금씩 글이란 이런 것이었구나를 깨달을 때였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면 (1)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워할 때 (2) 혜성처럼 등장한 옛 친구가 하필 내가 이제 막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한 글쓰기라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3) 그것에 유아기적 태도 즉, "나도 저거 갖고 놀고 싶어!" 류의 유치하고도 찬란한 감정이 뒤섞이면서 질투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20대 중반의 나는 마음도 좁았다. 친구에게 연락하여 기사 잘 봤다고 손뼉 쳐 주지도 못했다. 대신 까칠한 마음을 동기 삼아 영양사를 그만두고 기어이 시사월간지의 기자가 되었다. 월급은 반토박이 났다. 그 후 잡지 기자에서 사보 기자로, 병원 홍보팀의 언론 관리 담당으로 직업을 바꾸며 기사와 보도자료, 칼럼 등을 쓰며 밥벌이를 했다. 직업인으로 계속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이야기도 하고 싶어 졌고, 그걸 발판 삼아 한국을 떠난 지금도 글은 나와 늘 함께 하는 절친이 되었다.



질투 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샘솟는 희열


살면서 유선이 말고도 질투 나는 사람을 종종 만났다. 대개는 부럽다는 마음으로 끝나곤 했지만 정말 샘이 나다 못해 '펑' 터져서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날아갈 정도로 부러워서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나도 조금은 성숙해져서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감당할 만한 질투인가? 어느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지? 질투 나는 대상에서 취할 것은 무엇이고 버릴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나에게 질투는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감정이다. 이것을 그저 시기와 시샘의 마음으로 눈 흘기며 떠나보내면 감정만 낭비하고 끝날 것이다. 그러나 질투라는 로켓에 긍정의 날개를 장착시켜 같이 쏘아 올린다면 생각지도 못한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헛되이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감정이다. 아, 물론 남녀 사이의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지만.


사실 질투를 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괴롭다. 그것을 잘 넘겨 고차원적인 단계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쭈그렁밤송이 같이 느껴지는) 위치와 현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딱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열망도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질투의 마음이 강력한 동기로 변신할 수 있다.


2021년의 막바지로 치닫으며 삶의 동력이 될 또 한 명의 사람을 만났다. <아무튼, 술>, <호쾌하고 유쾌한 여자 축구>, <다정소감>을 쓴 김혼비 작가다. 그녀를 향한 나의 질투, 대박 쩐다. 어쩜 그리 글을 찰지고 맛깔스럽게 써내려 가는지. 처음엔 문체의 개성이 부러웠지만 몇 권의 책을 더 읽다 보니 글 속에 담긴 작가의 바른 생각,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부러웠다. 그러다가 2022년 나의 방향도 자연스레 정해졌다.


'내 글에 나만의 개성을 담아내는 것'    


질투 나는 작가를 만나서 기대가 된다. 여러 모로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 나의 좁은 생각을 깰 수 있어서 기쁘다.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을 더, 더,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이쯤 되면 이 글의 제목을 이렇게 바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질투는 나의 힘, 강력한 나의 힘!  





 

* 영글음의 인스타그램: @writer_youngle


글 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동기 부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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