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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Dec 10. 2021

때로는 거꾸로가 답일 수도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금까지의 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나는 참 어쭙잖게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살았었다. 그러자니 항상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기준점은 항상 도달하기 어려운 그 어딘가에 있어 보였으며, 그러기에 늘 스스로를 달달 볶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어디 '완벽'의 'ㅇ' 근처에라도 갈 수 있던가. 사실 무엇이든 기준을 어디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또 각자의 관점에 따라 완벽이란 천차만별이기 마련일진대, 늘 스스로에게 고달픈 잣대를 들이대니 인생이 어찌 아니 피곤할 수 있으랴.


그러던 내가 인생이라는 총체적 불완전 집합체를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던 계기는 역시나 내게 '엄마'라는 타이틀이 주어지고 난 후였다. 아이를 통해 내가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 것도 분명 맞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여유로운 마음이란 내게 있어 강제적으로 주어진 갑작스러운 변화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나 이외의 또 다른 인간, 정확히는 아직 아무것도 못하는 아주 조그마한 인간의 모든 것을 돌보며 동시에 나 스스로를 간수하자니 완벽은 엿이나 바꿔먹지 않으면 그야말로 살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엄마 사람으로 살기 위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얻어진 것들이 그 외에도 참 많았다. 하루 종일 말도 못 하는 아기만 쳐다보고 있다 보면 입에 거미줄이 쳐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했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육아로 인해 정신은 지치고 한 없이 스스로가 작아지기도 했다.

오로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행복을 찾는다는 인간의 본능이 채워지지 않는 상태였고, 그 어떤 성취감도 느낄 수 없는 반복적인 살림과 육아에 멘털은 탈탈 털려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없이 사랑스럽고 해맑은 아기의 모습에서 그 힘듦을 뛰어넘는 '행복'을 얻는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그때일 뿐 총체적으로는 행복감을 느낄 겨를이 그다지 많지 않고, 그러기에 진정한 행복의 마음으로 언제나 임한다기보다는 그야말로 '엄마니까' 정신력으로 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인고의 세월도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인지라, 끝이 없을 것 같던 전투 육아 기간을 견디고 그나마 조금씩 상황이 살만해져 가던 끝자락에 나는 글쓰기를 만났다.

글이란 참으로 마법과도 같다는 걸 그저 경험해본 사람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끄덕끄덕 수긍을 할 터인데, 써내리는 가운데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얻어 가졌던 부정적인 것들을 대부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게 치유뿐만 아니라 많은 기회를 확장해주고 있다. 처음 내게 '강연'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나는 그 선택 버튼을 꾹 누를 것이냐 말 것이냐로 머리를 싸매야 했다. 한때 대책 없이 넘쳐나는 '자신감' 하나 믿고 세상에 들이대던 나였는데, 어느새 너무도 작아져 과연 내가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는 대 방황의 시대를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심하게 나의 망설임을 슬며시 주변에 털어놨고 모두가 작정을 했다는 듯이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내게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치 내가 그 기회를 잡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는 이미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까짓 거 해보자


언제나 선(先) 고민 후(後) 결정이 미덕이라 믿고 살아온 나는 선 지름 후 수습을 그때 배웠다. 일단 Go! 를 외치고 나니 정말로 그것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나는 수습의 절차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고민하고 자료를 만들어보고 스크립트를 짜보며 구상을 했다. '내가 무슨 강연이야' 라던 생각은 참석해주신 많은 분들로부터 '준비된 강사'라는 칭찬을 들으며 더욱 용기를 얻게 되었고, 그다음 단계에선 '고민'은 누구네 개 이름이냐며 내가 할 수 있는 강의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기부여. 누군가가 끊임없이 내게 좋은 말을 해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깨달았다. 흡족할 때까지 충분히 북돋워짐을 기대하자면 결코 부여되지 않는 게 '동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보도 섀퍼는 '멘털의 연금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이 '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보다 '부딪쳐보자'라는 결단이 있다면 완주는 못하더라도 첫 구간 이상 뛸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어떤 일을 해보고자 할 때, 결코 완벽하게 준비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다소 부족하다고 느끼더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하며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 사실은 어딘가에 도달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코 앞에 마주하고 있다. 언제나와 같이 온갖 생성 가능한 모든 핑계를 동원하여 '완벽한 준비'를 운운할 것인가, 아니면 부딪쳐볼 것인가. 때로는 거꾸로가 답일 수도 있다. 결정을 위한 거듭된 고민은 언제까지나 제자리걸음에 그치게 할 뿐이다. 이미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사람은 뭐라도 하게 되지 않던가.


너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기만 하여 수습 못하는 사람도 간혹 보지만, 그렇게 대책 없이 저지르는 사람이 어찌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생 나만의 safety zone에 머무는 사람보다 뭔가 하나라도 는 경험이 있지 않던가.

부디 2022년에는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있어 전에 없던 새로운 선택과 도전의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우리 모두를 위해 파이팅을 외쳐본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12월의 주제는 '동기부여'입니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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