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왜 쓰냐고 내게 물으신다면
"엄마 지금 글 쓰느라 바빠. 잠깐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딸들이 뭔가를 해달라고 물어올 때 이렇게 답하고 싶어서. 너희들의 엄마는 밥도 짓고 청소도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기 위하여. 그게 꽤 근사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남들 사이에서 튀고 싶었던 아이는 그러나 그럴만한 능력은 갖추지 못해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을 기억한다. 사춘기 이후, 능력 대신 커다란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키운 덕에 무리에서 그럭저럭 존재감 있는 사람은 되었지만 여전히 원하는 걸 얻지는 못한 기분이었다. 그땐 몰랐다. 그게 무언지.
회사를 관둔 후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에겐 겉껍질이 아닌 내면을 채우는 일이 필요했다는 것을. 빈 깡통에 든 돌멩이가 내는 소리처럼 덜그럭 덜그럭 요란하기만 한 게 아니라 흔들어도 쉽게 소리가 나지 않게 속을 채워야 했다. 글을 쓰니 책 읽기가 자석처럼 따라붙었다.
나에게 글쓰기란 "깨닫는 행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아직 지나가지 못한 과거의 아픔을 깨닫는다. 지가 세상 제일인 줄 알고 까불던 아이는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깨달으며 얼굴을 붉힐 줄도 알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존재하는지, 소외된 자들이 많은지를 깨닫는다. 특히 나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래서 쓸 때마다 작아졌다. 작아져서 기뻤다. 작아져서 다행이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여전히 자만했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우물 안이 전부인 줄 알았을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세상의 반쪽은 끝내 못 보고 살았을 것이다.
글은 자판을 두드리는 손 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깊이 탐색하고 돌아보는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거니까 쓰다 쓰다 개미만큼 작아져도 계속 계속 쓰다 보면 조금씩은 커져간다. 앞으로도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엄마 지금 글 쓰느라 바빠, 라고 하는 건,
엄마 지금 깨닫느라 바빠,
엄마 지금 부끄러워하느라 바빠,
엄마 지금 멋진 사람 되느라 바빠, 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게 꽤 근사한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