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글음 Dec 28. 2022

일흔 넘은 엄마가
"사랑은 하나"라고 말했다

엄마가 이별했다. 

그 끝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랑은 하나더라, 둘로 나뉘질 않아."


몇 주 전 이틀 동안 임영웅 콘서트와 조용필 콘서트를 연달아 다녀온 직후였다. 오래 사랑해 온 조용필과 몇 년 전 샛별처럼 나타는 임영웅을 동시에 마음에 품는가 싶더니 콘서트를 다녀오고 확실해졌나 보다. 


엄마는 조용필을 떠났다. 몇 해 전엔 비를 맞으며 올림픽공원에서 하는 공연도 보러 갔던 엄마였는데. 떠날 때는 단칼에. 역시, 우리 엄마는 깔끔하다. 


임영웅의 세계는 이미 견고했다. 얼마나 견고했냐 하면... 팬클럽에 들어가 지령(?)을 받아가며 멜론을 비롯한 각종 앱에서 그의 노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광고 보는 걸 마다하지 않고 하트인지 별인지를 모을 정도였다. 


척추측만증이 있는 엄마는 내가 갈 때마다 머리를 앞으로 수그리고 척추가 휘든 말든 휴대폰으로 팬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1등 시키면 뉴욕 42번가 전광판에 임영웅 광고가 걸릴 거라나 뭐라나. 


또한 얼마나 견고했냐 하면... 임영웅 콘서트 티켓을 구하기 위해 내 동생은 와이파이가 잘 터진다는 테크노마트 9층에 가서 시계를 옆에 두고 겨우 예매를 했는데 장소가 하필이면 부산이었던 탓에 엄마는 KTX와 호텔을 예약하고 몇 만 원짜리 응원봉을 사야 했다. 


현실 세상에서도, 그러니까 아빠랑 살 때도 엄마의 사랑은 하나였을까? 동네 아는 오빠이던 아빠가 남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해서 나갔더니 그 자리에 아빠만 있더란다. 그러고는 "내가 바로 그 소개해줄 남자"라는 아빠를 엄마는 어이가 없어 죽을 뻔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어이가 없어 죽을 뻔한 건 소개팅 후의 일화를 들은 나였다. 아무리 젊은 남녀가 만났기로소니 만난 지 49일 만에 결혼을 하다니. 그리고 1년 후에 태어난 첫 딸, 나.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랬겠니."


라고 엄마는 역시, 웃으며 말했지만 별로, 와닿진 않는다. 워낙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라 구구절절 자신의 러브 스토리를 풀어놓은 적은 없다. 첫눈에 반해 화끈하게 사랑할 정력이 젊은 엄마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그저 믿고 싶을 뿐이다. 


사랑이 하나인들 둘인들 뭣이 중하겠는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중하지. 


아빠가 세상을 떠나신 지 8개월 째다. 

아직도 마음이 너무 시리다는 나의 꿈같은 엄마. 

그녀가 <임영웅 바라기>를 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고마워요, 영웅님.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이별>입니다.

                         

❤️ 팀라이트가 뭐 하는 곳이냐면

→ 팀라이트 소개


❤️매주 금요일 작가들의 시선이 담긴 레터를 받아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뉴스레터 정기구독


❤️팀라이트와 인스타그램으로 소통을 원한다면 

→ 팀라이트 인스타그램


❤️팀라이트 작가들의 다양한 글을 모아 보고 싶다면 

→ 팀라이트 공동 매거진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쓰면 매일 글 쓰는 기적을 이루는 '글루틴 2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