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땅을 보고 걸어 보세요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by 영글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니다. 영국에서는 아무것도 안 해도 무슨 일이 생기기도 한다. 땅을 보고 걷다가 동전을 줍는 경우가 많기 때문다. 이 또한 '걷는 행위'와 '줍는 행위'를 하긴 해야 하지만 돈을 벌 목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걷다 보면 땅에서 작고 동그란, 때론 반짝이는 동전을 발견하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난다.


영국 사람들도 카드사용 비율이 높긴 한데 여전히 현금을 사용하는 이들도 많은가 보다. 지난 8년 간 그렇게 많은 거리의 동전이 우리 집 돼지 저금통 속으로 들어온 걸 보면. 녹슨 동전이라도 일단 찾기만 하면 요즘 유행하는 "패시브인컴"을 달성한 것 같기도 하고 고객행사에 당첨된 것 같아 기분이 산뜻(?!)해진다. 불로소득은 달콤하다.


평균 잡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줍는 것 같다. 특히 놀이터, 동네 구멍가게,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득템 할 기회가 높다. 언제부턴가 우리 집 개와 산책할 때마다 땅을 보고 걷게 된 것은 이놈의 동전 탓이다. 어차피 남의 손으로 들어갈 운명이라면 이왕지사 내 주머니 안으로 모여들어 신나게 짤랑대다오, 하고 염원하며 땅바라기를 한다.


1펜스짜리도 줍고 2펜스, 5펜스, 10펜스, 가끔은 1파운드짜리 (1,500원) 동전도 발견한다. 보통 하나씩 줍지만 어쩔 땐 2-3개가 줄줄이 떨어져 있을 때도 있다. 그럴 때 황급히 허리를 숙여 줍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친다.


'이거 꿈 아니야?'


꿈에서 동전을 주우면 걱정거리가 생기는 뜻이라던데, 나는 지금 행운을 줍는가, 걱정을 줍는가? 다소 정신분석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다가, 만약 꿈이라면 주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행동경제학적인 가정을 하게 된다.


결론은? 줍는다, 이다.


꿈속에서 볼을 꼬집어 볼 때가 많다. 꿈인가 생시인가. 진짜 안 아프다. 하지만 그 몇 초뿐. 돌아서면 꿈인 것을 잊어버리고 상황에 몰두한다. 그러니 내 눈앞의 동전이 설령 꿈속의 요물이라 해도 일단은 줍고 당장의 기쁨을 만끽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데! 하는 자기계발론적인 결론에 다다르는 것이다.


한 번은 길을 가다가 동전인 줄 알고 눈빛을 반짝였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동전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장식 조각의 일부였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때의 황망함이란. 어쩐지 너무 밝게 빛나더라. 로즈골드의 화려한 색상이 동전일리는 없는데 방심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누가 볼세라 재빨리 거리를 지나쳤다.


그렇다고 내가 돈에 환장한 사람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동전 줍기에 환장한 사람"이다. 1.5에서 2센티미터의 동그라미에 담긴 작고 귀여운 행운에 환장한 것이다. 삶은 모순 투성이라 때때로 20원짜리 행운으로도 하루가 풍족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 정도쯤은 욕심 부려도 되지 않을까?


영국 사람들이라고 언제까지 동전을 가지고 다니다가 흘리겠는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풍경이다. 나는 그 풍경을 사랑할 뿐이고.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받은 문장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이고 다음 작가에게 지정한 문장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풍경이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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