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출간 후 1년
첫 책을 낸 지 딱 1년이 되었다. 영국에서 종이접기 수공예 작가가 되어 고객들과 만나며 일어났던 에피소드를 담은 에세이다. 출간기획서를 써서 출판사에 보내 계약을 하고 원고를 쓴답시고 매일 글과 씨름하던 시간이 이제는 안갯속 풍경처럼 아련하다. 그땐 꽤 괜찮은 글을 써낸 줄 알았다. 하지만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읽어 보니 얼굴이 빨개져서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다.
재미있게 썼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감정과잉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불필요한 수식어가 많고 과장된 비유법이 널렸다. 초입부가 지루해서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부족한 글도 있고 내용 자체가 재미없는 일화도 있다. 출간 전에는 괜찮았던 표지도, 제목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런 글을 세상에 내놓았다니 할 수만 있다면 모두 수거하고 싶었다. 책은 잘 안 팔렸다.
나에게 출간의 과정은 현실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에 비해 책 내기는 쉬워졌지만 독자 찾기는 어려워진 시대에 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안에 메시지를 담는 힘도 부족하고 책을 냈어도 그걸 팔아 낼 홍보 능력도 약했으며 아직 더 읽고 배워야 할 게 산더미였다.
부끄러움 끝에 내가 찾은 결론은 "다시는 먼저 책을 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온다면 모를까 기획서 들고 뛰어다니며 책 내려고 발버둥 치지는 말아야겠다, 그 대신 글쓰기 실력을 높이자, 하고. 그런데 얼마 전 읽은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자신이 쓴 글을 시간이 지나 다시 살피면서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점검하는 것, 그러다 때로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 가끔은 '나 글 진짜 못쓰는구나'라고 자학하는 것도 작가의 일이다."
장강명 작가처럼 유명한 사람도 나와 비슷한 걸 느끼는 거였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옛 글에서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건너야 할 다리처럼 생각되자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책을 쓰라고 말한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편의 글을 쓰다 보면 다양한 시선을 던지며 구석구석 살피게 되며 예상되는 독자의 비판에 대한 재반박을 준비하며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겪게 된다고. 책을 낼지 말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을 쓰겠다는 의지를 담아, 책 한 권의 분량이 되는 글을 써내는 것이라고.
글을 쓰는 것과 책을 쓰는 것은 다르다. 써내야 할 글의 분량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책에는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책 쓰는 것보다는 글 쓰는 것에 목표를 두는 것이 나은 일이라 생각했다. 출간에만 치중하는 것이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생각이 바뀌었다.
책을 쓸 목표를 가지고 하나의 기획으로 여러 편의 글을 써보는 것. 실제 그것이 책으로 나올지 말지는 훗날의 이야기이고, 설령 안 나오더라도 하나의 주제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글로 풀어내는 과정은 꽤 괜찮은 글쓰기 단련법이지 않을까.
올해 목표를 수정했다. 책을 낼 생각으로 글을 써보자. 핵심은 "책을 내자"가 아니라 책을 낼 생각으로 "글을 써보자"에 있다. 첫 책을 낸 뒤 자괴감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책 같은 건 다시는 내고 싶지 않은데 더 잘 쓰고 싶어서 이런 목표를 잡았다. 그래도 책 한 권에 75,000자를 담았던 첫 출간의 경험이 용기를 북돋아준다. 한번 해봤으니 또 할 수 있잖아? 하고. 잘 익은 막걸리 한 사발 하면 캬~ 소리가 절로 나듯, 내 글도 잘 숙성되어 언젠가는 캬~ 소리가 나기를 꿈꾼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글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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