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기자 시절 공중 화장실에 볼일 보러 들어갔다가도 문 앞에 붙은 광고 전단을 보며 교정 교열을 보던 때가 있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다 맞는지, 오탈자는 몇 개나 되는지 엉덩이 까고 앉아 하나, 둘 세었다. 종소리만 들으면 침을 흘리는 파블로의 개처럼 글자만 보면 침을 질질 흘리며 어디 틀린데 없나 확인하는 것은 일종의 조건반사였을 것이다.
20대 중반 비타민 회사에 상담 영양사로 들어갔지만 적성에 안 맞는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사표를 쓸까도 생각했지만 다시 자기소개서 쓰고 면접 보는 게 귀찮아 사장님께 사보를 창간하자는 기획서를 써서 제출했다. 덜컥 채택이 되는 바람에 1인 사보 기자가 되었다. 그 결과 기획은 물론 취재, 인터뷰, 기사 작성, 사진 촬영에 종이를 고르고 인쇄소 다니는 일까지 혼자 해야 했다. 그때 붙잡고 산 문장이 있다.
어느 대기업 사보 기자의 인터뷰 글에서 보았다. (아마 농심이었던 듯) 지금 생각하면 문장 잘못 썼다고 뭘 또 정신까지 들먹이나 싶지만 그때는 프로답게 일하고 싶을 때였다. 혼자 일하니 배울 사람도 없고 알아서 잘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위의 문구를 수첩 맨 앞에 적어 놓고 가끔씩 펼쳐보며 정신을 바짝 차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와는 별개로 활동하던 동호회에서 회원탐방 코너에 내가 뽑히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다른 회원들이 질문을 올리면 내가 답을 다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중 가장 신나게 답했던 건 바로 이 질문이다.
"살면서 시련을 많이 겪어 보았나요?"
웬일. 쓸 말이 너무 많았다. 그 질문에 답하면서 나의 시련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제가 실연 전문가인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특히 저는 짝사랑에 조예가 깊습니다. 저에게 관심 있는 남자도 많았지만 이상하게 제가 좋아하던 남자들은 마음을 열어주질 않았어요. 그래서 고백하고 실연당하고 고백하고 실연당하고를 밥 먹듯 했지요. 실연당할 때마다 썼던 방법은 술 마시기, 친구 만나기 어쩌고 저쩌고 지지고 볶고......."
회원들에게 내가 걸어온 실연의 역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몇몇 대댓글이 달렸고 특별한 일 없이 무사히 회원탐방을 마쳤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역시 화장실에서 교정을 보고 있다가 "시련"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불현듯 느낌표가 공중에 떠다녔다. 설마! 깨달음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시련? 실연? 언뜻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 단어. 실연도 시련의 한 종류이긴 할 테지만 결코 같지는 않은 단어.
변기 위에 앉았으나 이불킥을 하고 싶었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단 말인가? 실연이나 시련이나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라 다들 이해하고 넘어간 걸까? 말해주면 오히려 내가 쪽팔릴까 봐 배려를 해준 것일까?! 어쩌면 아무도 눈치 못 챘을지도 모르는데 그때의 나는 시련과 실연 속에 나의 나약한 정신이 드러났던 걸까 봐 조마조마했던 것 같다. 내 글 위로 이미 수많은 글들이 쌓여 해명할 기회도 놓쳐버린 나는 혼자 얼굴 빨개지며 사람들이 내 실수를 기억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걸 가지고 쪽팔려했다는 게 오히려 더 쪽팔리다. 생각해 보면 많은 일이 그런 것 같다. 부끄러운 일뿐 아니라 실연이나 시련이나 다 쓸모가 있는 경험인데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고 펄쩍 뛰며 난리 부르스를 추었던 게 다반사였으니.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45년 이상을 살아온 자의 깨달음이고 다시 20대로 돌아가 쪽팔린 상황과 대면한다면 여전히 펄쩍 뛰고 난리를 칠 것 같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살면서 가장 쪽팔렸던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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