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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Jul 24. 2023

처음부터 사지 말걸 후회하는
물품 베스트 3

오늘도 나는 고뇌한다. 머리칼을 쥐어 뜯으며. 이걸 버려? 말어? 옛날 옛적 어느 작가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을 내서 공부가 제일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 판 적이 있는데 나는 이런 책을 내고 싶다. 


<버리기가 제일 어려웠어요>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 소비습관을 점검하고 짐 정리를 시작한 지 8개월이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사지 말걸 후회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버리는 건 쉽지 않다. 이게 얼마짜리였는데!부터 시작해 언젠간 꼭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추억이 담겨 있는 물건이라면 과거의 일부를 뭉텅 잘라내는 느낌이라 주저하게 되기 때문이다. 


"에잇, 처음부터 사지 말 걸 그랬어." 


그렇다. 안 샀으면 버릴 일도 없는 법.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구매의 선택 앞에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며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안 사기. 지금 이 글에서는 가장 구매가 후회되는 물품 베스트 3을 소개해 보려 한다. 순위는 3등부터.  




3위. 의미를 담은 부피 큰 선물 오리 인형


우리 집에는 커다란 오리 인형이 있다. 남편과 연애 시절 내가 그에게 선물한 것이다. 남편 별명이 오리였다. 그래서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오리 모양의 인형을 사들고 잠실 롯데월드 쇼핑몰에서 그의 품에 안겨줬다. 주황색 부리가 오빠의 입술과 꼭 닮았다 말하며 우리는 깔깔댔었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자 인형은 아이 것이 되었다가 지금은 상자 안에서 몸과 대가리를 반으로 접고 쉬고 계신다.  


몇 차례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소유권은 남편에게 있으므로 그의 의사를 존중해야 했는데 갖고 있겠단다. 버려도 알아차리지 못할 테지만 양심의 소리가 그걸 막았다. 이젠 알겠다. 사람들이 왜 작고 반짝이는 선물을 선호하는지. 나도 그럴 걸 그랬다. 금이든 은이든 동이든 돈을 좀 더 모아 엄지손톱만 한 오리 반지 같은 걸 선물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작은 집에 버리지도 못하는 어린애 만한 인형이 웬 말이냐, 웬 말이냐, 웬 말이냐!


머리 부분이 상당히 크신 오리 인형님


2위 - 본전 생각에 심장이 벌렁벌렁 결혼식용 맞춤 한복 


엄마가 결혼할 때 맞춰 준 몇백만 원짜리 부부 한복. 오랜 시간 애물단지였다. 정리하려고 수 차례 마음먹은 적은 있으나 그때마다 구매 가격이 맴돌아 여태 함께 했다. 그나마 미국, 영국 살면서 한국 문화를 알린답시고 치맛자락 펄럭이며 애들 학교에 간 적이 손에 꼽을 만큼은 있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식 당일 딱 하루 입고 끝났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고, 고급 원단 비싼 한복이라도 입고 돌아다녀야 높은 가격도 빛나는 법이거늘. 장롱 속에서 온몸으로 먼지를 받아 안고 20년을 버티다가 허연 곰팡이마저 슬어버린 한복을 이번엔 구슬피 울며 정리했다. 한국 사람 거의 없는 스코틀랜드라 기부도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직행. 애달픈 몇백 만원이여 이젠 안녕. 내가 다시 결혼하면 한복을 사나 봐라, 빌려 입지. 



1위 - 벽면을 다 차지했던 결혼 & 돌 사진 액자  


대망의 1위는 신혼집에 가면 대부분 벽에 걸려 있는 큰 웨딩 사진과 아이 있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 기념용 벽걸이 액자다. 과장을 보태 로코코 시대 어느 백작의 성에서 볼 법한 화려한 테두리를 두른 결혼 액자는 버리기가 무척 번거로웠다. 사이즈 큰 사진은 어쩔 것인가. 기술의 발달로 화질도 뛰어나 가만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그 안의 사람들이 2D 종이를 뚫고 3D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생생함이 가득한데 말이다. 


한편으론 이상한 상상에 빠진다. 사진을 버렸다 치자. 한밤 중 모두가 잠든 시간, 버려진 사진 속 얼굴들에서 푸른빛이 나오며 주인공의 영혼이 빠져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상상이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 집에도 오고 냄새나는 쓰레기장 주변을 맴돌다 아침이 되었는데 다른 얼굴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실제 인간들의 인생이 꼬이고 바뀌고 얽히고설키고! 


이런 일도 있었다. 두 아이의 얼굴이 인화된 컵을 정리하고 싶어서 활동하는 미니멀 라이프 카페에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질문을 올렸더니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애들 얼굴에 청 테이프를 붙여서 불연성 폐기물로 내놓으세요."


충격이었다. 한때는 사랑스럽기 짝이 없던 물품들이 갑자기 호러 무비의 소품이 된 듯한 기분이 들다니. 결국 사진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뒤로 미루었다. 그 후 결심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웨딩 촬영을 하지 말아야지. 돌 사진도 내가 찍어야지.  


내가 지금까지 아끼는 사진들은 어디에 놀러 가거나 집 근처 공원 등 일상 속에서 담아낸 소박한 스틸 컷이지 스튜디오에서 전문가가 찍어준 사진이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4X6이나 5X7 사이즈로 뽑아 집안 곳곳에 두고 가끔씩 들여다보며 웃을 수 있는 그런 사진이이도 충분하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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