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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Jul 12. 2023

더는 볶아대지 않겠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볶음밥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왜 그리 자신을 볶아대며 살았을까. 볶아댈 땐 나만 볶나? 당연 내 옆의 아내도 같이 볶는다. 아이들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다. 소심한 아빠에게 조바심의 아킬레스건이 바늘 한 땀만큼이라도 당겨졌다 싶으면 조용하던 집안은 주문 밀린 통닭집 마냥 사방팔방 볶고 튀기느라 정신머리가 아득해진다.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흥미롭고 재미있으면서도 쪽팔리고 두려운 점도 동시에 존재한다. 쓰면 쓸수록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혼자 킥킥거리다 민망해 하기를, 똑딱 거리는 시계추처럼 하릴없이 왔다 갔다 거리다가 앗차, 이러다 정신줄 놓치면 큰일 나겠네 하더니만, 브런치스토리의 발행 버튼을 누를까 말까를 두고 망설이기를 마치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무수한 영상들 앞에 감히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몰라 깊은 산속 옹달샘에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토끼처럼, 줄기차게 썸네일만 훑어보다 15분이 지나도록 단 한 편의 영상도 감상하지 못하고 시간만 버렸다며 준엄히 자책하며 볶고 닦달하기만 벌써 몇 년째인가. 하아...


가이드 일에서 제일 어려운 건 사람도 설명도 아닌 정해진 시간을 맞추는 일이다. 단체 여행 특성상 그럴 일은 정말 드물지만,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여유를 즐기기보단 이럴 때에 열씸히 (그렇다, 열심을 넘어선 열씸이다) 발품 팔며 돌아다니며 더 많이 알아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불안해하고, 반대로 ㅡ 그렇다, 기실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전히 나이 탓이다.  ㅡ 빡빡하면 빡빡한 대로 계획한 시간에서 1분 1초에 늦어질까 노심초사 및 노이로제로 불안불안해 하며, 안 그래도 새가슴에 행여나 협심증 찾아올까 심호흡으로 가다듬고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하며 젤리를 씹고 알사탕을 녹여가며 괜찮다 괜찮을 거다 괜찮아야만 된다 안심 3종 세트 문구를 양손 꼽아가며 안 괜찮은 걸 기어코 괜찮다며 정신승리를 주입하는 자신을 볼 때면 정말 왜 이러고 사는 거냐 하며 한숨을 밥 먹듯 내쉰다.


자신을 쉼 없이 닦달하고, 끝없이 볶아댄다는 건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마냥. 정상에 선 셀럽 마냥. 아무것도 아닌 나를 뭐라도 되는 것처럼 나 자신을 올려놓으니 여기서 떨어지면 종말이라도 맞이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거다. 그렇지만 호들갑을 떨고 놀라워하고 애통해하는 건 모두 살아있고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에 느낄 수 있는 반응과 감정이다.


윤회를 믿지 않으나 n회차 다시 태어나 산다면, 여기에 기억과 경험치가 리셋되지 않고 고스란히 누적되어 다시 태어난다면, 몇 번을 비슷한 상황과 환경 속에 반복해 경험한 나 아니 그에게 (어떤 걸 두고 진짜 자아라고 해야 할지는 논외로 하고) 더는 새롭게 반응할 것이 없을 거다. 누군가에겐 처음이라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놀랍고 신기할 일이 나에게는 이미 일상이었을 테니까.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거나 어쩌면 그 마저도 없이 그냥 무표정으로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하에서 본다면 다시 태어난다는 건 일말의 재미도 없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는 다시 태어나길 바라기보다, 지금의 삶에 보다 충실하게 사는 것이 몇 백배 나은 일일 것이다. 다시 태어나지도 못할 거면서 닦달하지 않겠다느니, 볶아대지 않겠다느니 하는 백지수표를 날리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안온한 삶의 태도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일상 관찰에 보다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야겠다. (얼른 찾자, 얼른... 아이쿠야, 또 직업병 돕니다)


사진: Unsplash 의 Getúlio Moraes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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